이영표가본한국축구“한국축구,지금필요한건뭐?정신력”

입력 2008-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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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유럽과 비교해 가장 뒤지는 부분이 바로 ‘정신력’입니다.” 조금은 의외였다. 이영표(31·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한국 축구가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로 ‘정신력’을 꼽았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막연한 두려움과 약체를 쉽게 생각하는 것, 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점에서 한국은 선진 축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이영표는 23일(한국시간) 도르트문트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 축구에 대한 단상, 자신이 걸어온 과거와 현재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 정신력 강한 한국? 한국 축구의 강점을 꼽을 때 팬들은 ‘정신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영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진짜 정신력은 경기 중, 다쳤을 때 붕대감고 뛰는 게 아니라 강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동료들도 많이 부족하다. 붕대감고 뛰는 투혼은 정신력의 일부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멘털’이다.” 그는 국내 선수들이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정신 수치가 전체 65% 수준이라면 유럽 선수들은 85% 이상이라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큰 두려움을 느낀다는 자신을 예로 든 그는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진정한 정신력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먼저 희망을 내다봤다. “유럽은 아무리 해도 100%에 머물지만 우린 한 번 폭발하면 120%로 상승한다. 2002년이 그랬다. 한국 축구는 뭐든 할 수 있다.” ○ 희망적인 한국, 다만…. 실력-타이밍-운이 모두 맞아 떨어진 2002년을 한국의 전성기로 꼽은 이영표는 최근 대표팀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마라도나, 브라질과 펠레 등 축구 역사를 보면 누구든 최고 시절이 있었다. 우린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하며 희망을 느꼈다. 여전히 우린 발전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후배들의 높은 능력도 한 가지 이유. 대표 선수로서 꼭 필요한 기본 인성과 행동은 물론, 기량까지 두루 갖췄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제 의사를 밝히는 모습도 보기 좋다고 했다. 이영표는 “(후배들이)더 당당할 필요가 있다.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이 한 걸음 도약하기 위한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좋은 지도자를 육성할 수 있는 적절한 투자와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 “우린 공부하는 지도자가 많다. 다만, 좋은 선수를 육성하는 지도자를 위한 투자가 부족하다. 재정적 후원과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 유럽 진출은 실력, 마케팅은 0%…그러나 난 부족해 사실 네덜란드, 잉글랜드를 거쳐 독일 무대로 진입한 이영표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유럽 진출이 마케팅의 영향이 아니냐는 일부의 시선. 그는 유럽에서 팀을 옮길 때마다 여러 클럽의 오퍼가 있었고, 직접 선택했다고 했다. 설기현(풀럼), 박주영(AS모나코) 등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늘 2-3개 팀을 놓고 고민했다. 유럽은 한국 선수를 영입할 때 마케팅을 기대하지 않는다. 실정 모르는 사대주의적 발상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냉정했다. 수비수로서 PSV, 토트넘, 도르트문트 등 명문 클럽에서 줄곧 활약한 이영표는 “기술, 체력, 정신력 모든 게 부족하다”고 푸념했다. 그는 “늘 ‘축구를 못 한다’는 생각뿐이다. 주인공이 나처럼 느껴지는 경기도 있지만 한 시즌에 두 세 경기다. 어제 만족해도 오늘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유럽 진출 후 특히 그랬다”고 설명했다. ○ 축구가 전부?…삶의 일부일 뿐 한때 이영표는 축구가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축구는 삶의 일부이다. 얽매이면 그 틀에 갇혀버린다”는 평소 지론을 전했다. 이렇듯 부담을 떨쳐버린 요즘이 훨씬 편안하다고 했다. 이적을 앞두고 여유를 보인 것도 그래서다. 이영표는 “축구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본 순간, 진짜 행복을 느꼈다. 축구 뿐 아니라 다른 소중한 무언가가 내 곁에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다. 이영표는 “준비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축구를 하며 행복을 느낀다. 여유를 찾았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선수가 즐거워야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난 즐기는 축구로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도르트문트(독일)|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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