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의또다른주인공임용수야구캐스터

입력 2008-10-27 04: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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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간다~ 넘어간다” 홈런이 터지면 목청도 터진다. 굵직한 바리톤 음색의 함성이 야구팬들을 주르륵 TV 앞으로 끌어당긴다. 선수 못잖게 구장에서 더 잦은 열기를 뽑아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캐스터다. 이번 시즌 동안 무려 140~150회의 야구중계 방송을 진행한 임용수(39) 프리랜서 야구전문캐스터는 호탕하고 시원스러운 음색, 재치 넘치는 말주변으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계를 할 때도, 그냥 평범하게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힘이 넘치는 그의 바리톤 추임새를 듣고 나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1997년 한국스포츠TV에서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임 캐스터는 딱 10년 되는 2006년 3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진급에 대한 욕심도 없다. 스스로 책임 더 지고, 현장을 떠나지 않는 게 내 꿈이다.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마이크를 잡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이른 2005년 ‘야생’으로 나와 스포츠캐스터 프리랜서 1호가 됐다. 현재 SBS스포츠, 온미디어, 원음방송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임 캐스터는 이력이 특이하다. 대학, 대학원 시절 사촌누나의 권유로 성악을 전공했으며, 강마에가 아닌 ‘임마에’가 될 뻔 했다.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첫 사회생활을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 문화관련 일을 했다. 항공 초기 취항지가 결정되면 현악 4중주 연주 등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고 먼저 가서 보여주는 일이었다. 일할수록 직접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신문에 실린 아나운서 공고를 보고 시험을 치른 뒤, 방송무대이자 스포츠현장으로 발을 옮기게 된다. MBC ESPN의 한명재 캐스터,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 등이 그의 동기다. 스포츠는 이제 그에게 음악이면서 곧 인생이다. 포르테, 피아니시모로 이어지는 선율처럼 경기에도 강약이 있고, 야구는 그를 기쁘게도 했다가 속상하게도 만든다. “백팔 번뇌처럼 야구공에는 실밥이 108개입니다. 구기종목 중에서 공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야 득점이 되는 경기는 야구가 유일하죠. 그것도 ‘홈’으로 들어와야 득점이 되니까, 사람이 집을 나갔으면 들어와야지 못 들어오면 안 되니… 인생과 닮았죠.” 도루하다 아웃되고 꼭 볼넷으로 나간 주자가 득점되고, 안타로 나간 사람이 떨어지는 등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파고드는 야구 ‘맛’에 그는 항상 매료된다고 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어려운 게 야구다. 평소 야구 관련 이론서와 KBO의 기술 지도서 등 야구 책을 정독하고, 해설자·야구 코치 등 두루두루 야구 관련자들로부터 정보를 얻는다. “진짜 팀에 들어가서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하고 싶다”는 그는 선진 야구 시스템을 공부하고 30개의 MLB 구장을 돌며 방송하는 것 역시 꿈이다. 야구 중계를 하다보면 특별히 좋아하는 팀은 없고, 경기를 속도감 넘치고 신나게 이끌어주는 팀이 좋을 뿐이다. 특정하게 멋지게 느낀 선수라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내야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다. “(오가사와라는) 선수 보호대도 없이 그냥 맨 몸으로 나온다. 보호대 하면 투수한테 약해 보인다고, 심리적으로 강해 보이고자 그냥 나온다. 헛스윙을 하더라도 마지막인 것처럼 죽기 살기로 몸이 휘청할 정도로 배트를 휘두른다”며 야구기록지에 체크해둔 오가사와라의 통산 300호 홈런과 114개의 삼진 기록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임 캐스터는 중계 중 맛깔스러운 양념을 치기 위해 시사 이슈도 빠뜨리지 않는다. “야구중계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좋겠다”며 아침마다 섹션별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점검한다. 준비는 10가지를 해도 실제로 써먹는 게 2~3가지 밖에 안 되더라도 중계 전 야구와 야구 외적인 모든 자료를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는 올해 미국에 가서 한인라디오를 통해 베이징올림픽 야구중계를 할 때였다. 금메달을 딴 순간, 감격스러워 눈물도 핑 돌았다. “그래도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올해 올림픽 같은 경우 일본의 호시노 감독은 1년 동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진 거다. ‘우리는 실전에 강하잖아’이런 말을 믿을 게 아니라, 준비된 사람은 언젠가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철저한 준비 정신은 배워야 한다”고 그때를 회상하며, “기업 홍보 수단으로 야구가 전락해선 안 된다. 준비 정신. 시스템, 인프라 등 자생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한국야구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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