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KBO무원칙…“창피해죽겠다”

입력 2008-1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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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야구인25명설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低)신뢰사회’로 규정했다. ‘일본은 트러스트가 있어 선진국, 한국은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후쿠야마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최근 프로야구계의 논란을 보면 그 밑바탕에는 신뢰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은 사실이다. 삼성이 30억원에 히어로즈 에이스를 사들인 소위 ‘장원삼 사태’. 묵시적 신사협정을 위반해 타 6개 구단의 반발을 부른 삼성과 히어로즈는 어떻게든 트레이드를 관철하겠다는 태도다. 철학도, 리더십도 부재한 KBO는 19일 이사회에 공을 넘겼다. 스포츠동아는 이런 시국에서 8개 구단 단장, 감독, 선수와 프로야구선수협회의 의견을 청취해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봤다. ○의욕 앞선 삼성의 무리수 모 단장은 “삼성이 야구계를 쉽게 생각하고 벌인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단장은 “장원삼 사태는 삼성이 먼저 제의하지 않았으면 터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봤다. 작심하고 삼성이 ‘구두합의’란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는 시각이다. “삼성은 성적 지상주의에 쫓겨 넘어서 안 될 선을 넘었다”, “다른 팀도 FA 영입보다 장원삼 같은 선수 사오는 게 더 좋은지 몰라서 안한 게 아니다”, “경기 보이콧 생각은 당연”이란 야구계의 목소리는 삼성의 일방주의를 제지하고 있다. ○KBO, 도대체 원칙과 철학이 있기나 한가 당사자들만 빼면 한결같이 동업자 정신, 신뢰의 부재를 한탄했다. “창피해 죽겠다”는 야구인도 있다. 일은 삼성의 과욕에서 비롯됐지만 KBO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와 대응책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동업자 정신을 중시한다면 트레이드를 원상복구시키면 그만이다. 모 단장은 “이 트레이드를 ‘해도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KBO 사람을 찾아내 문책하자”란 주장까지 내놨다. 또 다른 단장은 “MLB, NBA처럼 유능한 커미셔너가 중장기 비전을 잡아줘야 되는데 KBO는 그럴 열정도, 비전도, 리더십도 없다”고 지적했다. 리그의 전력평준화에 진력할 의사가 없다면 차라리 ‘한국에도 요미우리나 양키스가 필요하다’란 신자유주의 노선을 깔고 트레이드를 승인하면 될 텐데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모 감독 말처럼 “원칙도 없고 사안이 닥치면 대강대강 넘어가기 급급”하다. 현대 매각 문제부터 WBC 감독 선임, 장원삼 사태에 이르기까지 늘 그런 식이었다. “지방구장 보수와 돔구장 건설도 말만 앞섰지 실행은 안 됐다”, “주먹구구 행정 10년 전과 똑같다”, “히어로즈에 혜택 주려다 제 발등을 찍었다”는 냉소 대상으로 전락한 KBO는 스스로 권위를 파먹고 있다. ○히어로즈, 왜 야구단을 운영하는가 히어로즈에 대해선 선수들이 더 엄격했다. 어떤 선수는 “선수들은 히어로즈를 영세구단이라 부른다”고 했다. 특히 구단 재정에 민감하고 트레이드의 아픔을 아는 선수들은 “자금 동원이 안 되니까 선수를 내다 팔면 남는 선수는 뭐가 되냐”, “이런 환경에서 내년 성적은 요원하다. 김시진 감독이 안 됐다”, “네이밍마케팅의 포기”, “빨리 다른 기업에 인수돼 선수들이 더 이상 피해 보는 일이 없어야”란 비판을 토해냈다. 심지어 삼성조차 “돈 없어 판 것”이라고 봤다. 8구단 체제 존속의 구세주처럼 행세하지만 ‘이런 식이면 누구나 구단주 하겠다’란 비아냥을 자초하는 히어로즈. ‘장원삼 사태’는 히어로즈의 존재 이유를 되묻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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