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시누이시집살이몰라요호호호

입력 2009-02-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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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시누이가 세 분이나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결혼 허락을 하실 적에 “하나, 둘도 아니고, 손 위로 시누이가 셋이나 있어서 어쩌겠냐? 옛말에 때리는 시애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잖여. 그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닌디… 게다가 시누 두 명은 가까이 산다혔재?” 하시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고, 못 하면 못했다고 구박이나 듣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염려를 모두 붙들어 맬 만큼, 저희 시누이들은 모두 좋은 분들입니다. 특히 막내 시누이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안 나기 때문에 자주 만나서 시장에 가기도 하고, 같이 외출도 했습니다. 제가 ‘형님’대신 ‘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분들은 저희를 친자매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큰 시누이와 저는 거의 열다섯 살의 나이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조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큰 형님께서 대뜸 제 남편을 ‘저런 사고뭉치’ 라고 부르며 “내 남동생을 누가 데리고 살까 했는데, 올케 아니면 저 놈이 어떻게 장가 갔겠어” 하시면서 늘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한번은 신혼 초에 저희 부부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시어머님과 함께 사는지라 가급적 큰소리를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 날은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를 낸 후에도 금방 화해를 못 하고 어른들 계신 데도 몇날 며칠 냉전이 지속됐습니다. 어느 날 큰형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겁니다. “올케 잠깐 우리 집에 와봐.” 전 그 말씀에 저희 부부가 싸운 걸 알고 그거 혼내시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잔뜩 겁을 먹고 형님네 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큰형님께서 저를 반갑게 맞이하시며 “부부싸움하고 왜 집에 있어? 안 그래도 속 터져 죽겠는데, 그럴 땐 집에 있지 말고 무조건 나와. 근데 막상 가려니 친정은 못 가겠고 갈 데가 없지? 그럴 땐 우리 집에 와. 먼 것도 아닌데 여기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면 좋잖아. 난 무조건 올케 편이지. 그 철도 안 든 놈.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난 그 놈 편 안 들어. 지가 뭐 잘난 게 있어서 올케 같은 사람한테 뭐라 해∼ 나 같으면 그런 놈 하고 안 살아!” 이러면서 언니네 집이다 생각하고 맘 편히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느 집과는 사뭇 다른 풍경 아닌가요? 여느 집 같으면 어디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부부싸움 하고, 어른들 계신데 냉전을 하냐며 불러서 혼을 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큰형님은 제가 풀 죽은 목소리로 “형님 저 가도 되요?”라고 하면 “그럼 와도 되지. 엄마한테는 내가 잘 말씀드릴게∼ 얼른 와∼” 하면서 저를 불러들이신 답니다. 그걸 보고 저희 어머님은 “너도 참 별나다. 난 예전에 부부싸움 하고 시누이네 집에는 갈 생각도 못 했는데 넌 어떻게 된 애가 시누이네 집을 네 집 드나들 듯 그렇게 다니냐? 하여튼 너도 참 별나다” 하시면서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셨습니다. 물론 이런 시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시누이들이 가깝게 살다보니 거의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저희 집에 오시는 데 그럴 때마다 밥 차리고 또 치다꺼리해야합니다. 거기다 제 사생활이 거의 노출되다시피 해서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싸움 뿐만 아니라 고부갈등도 ‘우리 엄마 성격 보통 아니지?’ 하면서 제 편을 들어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희 시누이들 덕에 큰 어려움과 갈등을 잘 이겨내고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형님들이 고마워서라도 어머니 잘 보필하고 남편과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제게는 귀하고 감사한 존재, 우리 시누이들,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습니다. 충남 청양 | 정미자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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