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꿈같은여행…고모덕분이에요”

입력 2009-0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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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름 넣느라 주유소에 갔더니 신년 행사라며 동전으로 종이를 긁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긁었더니 바로 영화관람권 두 장에 당첨된 겁니다. 남편도 영화를 좋아하고, 저도 좋아했기 때문에 속으로 잘됐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하고 아무리 날짜를 맞춰 보아도 영화 보러 갈 시간이 도저히 안 되는 겁니다.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누구랑 갈지 고민하다 불현듯 저희 고모 생각이 났습니다. 고모는 고모부가 바람피워 밖에서 낳은 아들을 마치 자기 자식인양 열심히 키워 장가까지 보낸 분입니다. 천성이 밝고 긍정적인 분이라 저희가 전화하면 언제나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십니다. 이번에도 “고모 나야∼” 하면서 전화를 걸었더니 “그래. 우리 조카딸이 무신 일이고?” 하셨습니다. 제가 영화표 얘기하며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신랑이랑 가라며 한사코 사양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조르자 “야는 참! 그래 그라모 어데로 언제까지 나 가면 되노?” 하면서 은근히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극장 위치를 자세히 설명 드렸더니 어딘지 아시겠다며 시간 맞춰 나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화보기로 한 날, 그날따라 왜 그리도 칼바람이던지 연세 드신 분이 감기 걸리실 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저는 고모가 어색하지 않게 얼른 팔짱도 끼고, 평소엔 사먹지도 않던 팝콘과 콜라까지 사서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어찌나 집중해서 영화를 보시던지 마치 스크린 속에 빨려 들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재밌었냐고 여쭤보니까 “내가 극장 온 게 한 20년 됐나? 조카 딸 때메 좋은 귀경했네” 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다 저희 앞에 어떤 젊은 부부 모습을 보시고는 표정이 어두워지셨습니다. 아마도 당신 아들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어도,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키웠는데, 사촌오빠는 저희 고모를 거의 찾아뵙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사우디로 일하러 갔는데, 귀국해서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 하고 고모 속을 참 많이 썩혔습니다. 그 날도 그냥 고모를 돌려보내면 혼자 저녁 드실 것 같아, 제가 저녁 드시고 가라고 어떤 식당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며 경품 추첨권을 주었습니다.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고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는 추첨권이었습니다. 고모는 컴퓨터로 하는 건 잘 모른다며 그 추첨권을 제게 주셨는데, 저 역시 홈페이지 회원수 늘리려는 그 식당의 상술로 생각하고 그 걸 그냥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우리 딸이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더니 “엄마! 엄마! 이거 대박이다!!!. 제주도 2박 3일, 2인 이용권이래. 비행기 값만 내면, 호텔숙식이랑 자동차 렌트까지 다 해준다는데? 봐봐∼”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새해에 이게 웬 횡재인가 저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얼른 고모께 전화 드려서 고모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거는 조카딸이 운이 좋아 당첨된 거야. 내 생각 하지말고 니 어무이하고 같이 다녀와”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갔던 적이 없었는데, 고모가 그렇게 배려해 주시니 엄마랑 여행도 가게 됐습니다. 고모와 다정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던 영화표 당첨권, 엄마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제주도 여행권, 2009년이 시작되자마자 연이어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어쩐지 올 한해는 뭐든 잘 될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듭니다. 부산 서구 | 전광자 왕영은 이상우의 행복한 아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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