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울아들곱슬머리별명은서너개

입력 2009-02-01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


어릴 적 이모부는 절 볼 때마다 “어이구∼ 우리 오망할멈, 잘 있었냐?” 라고 인사를 하셔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 제 외모가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약간 외국인처럼 생긴 얼굴이었습니다. 이모부 때문에 가족, 친척들 사이에 제 별명이 ‘오망할멈’이 됐습니다. 평범한 한국사람 같지 않은 제 외모에 머리카락까지 도와주지 않아 머리가 곱슬머리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하루도 맘 편하게 교문을 지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복장검사 하는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너 이리 와봐! 학생이 머리가 이게 뭐야? 누가 파마하고 다니래!!” 이러면서 억울한 소리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선생님 이게 파마한 머리가 아니고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곱슬거렸어요”하면서 열심히 설명해 드려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해서 아들 딱 하나만 낳고 살고 있는데 이 녀석이 크면 클수록 제 외모를 닮아 가는 겁니다. 머리도 절 닮아 곱슬머리라서 매일 양치질하며 손가락으로 쫙∼쫙∼ 펴주는 게 일입니다. 거기다 저처럼 눈이 움푹 들어가 있어서, 얼핏 보면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반 농담으로, “얘, 너는 꼭 아랍왕자처럼 생겼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별명이 ‘아랍왕자’가 됐습니다. 그 날 애가 씩씩거리며 들어와서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낳아 가지고 애들한테 놀림 당하게 해요!! 이게 뭐야∼ 엄마 때문에 한국왕자도 아니고, 아랍왕자가 뭐야∼ 아랍왕자가∼” 이러면서 성을 내는데, 전들 어쩌겠습니까? 어쨌든 그렇게 속상해서 아들은 툴툴거리고 있는데, 제 남편 배꼽을 잡고 웃더니 휴대전화에 아들 전화번호를 아예 ‘아랍왕자’라고 저장해버린 겁니다. 아들이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며 대들고, 저도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뭐 어때∼ 나만 보는 건데. 남들이 이게 우리 아들번혼지, 아니면 다른 사람 번혼지 알기나 하겠어? 그냥 둬∼ 재밌잖아∼” 이러면서 바꾸질 않는 겁니다. 심지어 제 번호도 ‘오망할멈’이라고 저장해 놨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남편의 개구리 심보! 도무지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 제 아들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가만히 TV를 보고 있다가 “엄마 내가 오바마 닮았어요?”하고 물어봤습니다. 제가 “갑자기 웬 오바마?” 하니까, “지난번에 생물선생님이 나보고 오바마 닮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집안에 혹시 미국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인 사람 없냐고 웃으시던데?” 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대통령을 닮았다는데 좋은 거 아닌가요? 제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더니, 아들도 다음부터는 자기 별명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들한테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진짜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 남자애들 교복이 남자들 양복처럼 생겨서, 큰 키에, 마른 체구에, 움푹 들어간 눈에, 까무잡잡한 모습이 진짜 양복 입고 있는 오바마입니다. 제 남편도 휴대전화 이름을 ‘아랍왕자’ 대신 ‘오바마’ 로 바꿔놨답니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거실 달력에 1월 20일에 동그라미를 쳐놓아서 그게 무슨 날이냐고 물어봤더니,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닮았다고 관심도 많은 모양입니다. 외모 때문에 고민 많았던 우리 아들 미국 대통령 덕(?)에 좋은 별명까지 얻고, 이미지 개선은 확실하게 잘 된 것 같습니다. 올해 드디어 고3이 되었는데, 우리 아들 괜히 떨린다고 합니다. 겁먹을 필요 없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습니다. 대전 서구 | 김미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