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익살꾼’김초롱“부녀계약?말도안되는소설”

입력 2009-02-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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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팬 보다 미국팬이 많아 “동양인으로는 처음 솔하임컵의 대표로 선발돼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국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마음고생이 더 컸다. 사실과 다른 소문이 번지면서 억울함에 밤잠까지 설쳤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김초롱(25·미국명 크리스티나 김)은 익살스럽고 튀는 행동으로 LPGA 투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팬이 적다. 안티팬이 더 많다. 지난달 30일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만난 김초롱과 부친 김만규(59) 씨는 “지난 일을 다시 들춰내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서운함이 많다”며 옛 상처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2004년 12월, 김초롱은 한일여자골프대항전에 한국팀 대표로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2001년 펄신(42) 이후 두 번째로 미국 국적을 갖고 있던 한국계 선수가 출전권을 획득했다. 김초롱은 LPGA 투어 포인트 순위에서 6위를 기록해 출전권을 따냈다. 총 13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한일전에서 LPGA 투어 성적 상위자 중 6위 이내까지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김초롱은 1승1패를 기록해 한국팀 우승에 기여했고 “한국대표로 출전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초롱은 다른 한국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듬해 터졌다. 여자골프 미국과 유럽의 국가대항전 솔하임컵에 미국대표로 출전하면서 국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솔하임컵의 미국대표로 선발됐던 김초롱은 미국의 우승이 확정 된 뒤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다”고 말하면서 국적 논란을 부채질했다. 팬들의 실망은 컸다. 1년 전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면서 “미국인이 한국인 흉내를 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 골프팬들에게는 인기가 높은 김초롱이 한국에서 많은 안티팬을 거느리게 된 이유다. 비난이 거세지자 한국여자골프협회는 2005년 한일여자골프대항전에서 김초롱이 선발 기준을 채우더라도 출전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이에 대해 김만규 씨는 섭섭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엄밀히 말하면 한일여자골프대항전은 단순한 이벤트 경기다. 솔하임컵도 마찬가지다. 양 국가의 협회에 소속된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이지 국가대표가 치르는 공식 대회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두 대회가 국가대표의 공식경기인 것으로 인식돼 국적 논란이 발생했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딸에 대한 편견도 오해라고 해명했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딸의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오해가 생겼다. 한국에서 살지 않았는데도 한국대표에 선발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이어 미국대표로 선발돼 솔하임컵에서 우승한 것이 기분 좋아 한 말이었는데 확대 해석돼 팬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양국에서 대표로 선발된 것이 자랑스러웠고, 대회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지만 튀는 행동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됐다는 얘기다. 김만규 씨는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일로 아직까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의 든든한 후원자” 김만규 씨는 LPGA 투어에서 몇 안 되는 ‘아버지 캐디’로 활동하고 있다. 주니어 시절부터 프로가 된 이후까지 계속해서 캐디로 활동했으니 13년 넘게 호흡을 맞춰왔다. 그런 모습 때문일까. 한국에서 또 다른 괴소문이 번졌다. 부모와 자식 간의 ‘계약설’이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아니지만 부녀 사이에 ‘상금의 얼마를 나누어 갖는다’는 계약설이 소문으로 나돌았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김만규 씨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 털어 놓았다. “첫 우승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롱이에게 ‘아빠에게 뭘 해줄래, 미국식으로 해줄래. 한국식으로 해줄래?’라고 농담하듯 물었다. 내 생각에는 분명 ‘미국식으로 하겠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식으로 하겠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그래서 ‘한국식이 뭔지 아느냐?’고 되물었더니 ‘내가 아빠, 엄마를 평생 지켜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해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에서야 딸의 상금을 부모가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미국에서는 다르다. 만 18세가 넘으면 모두 본인의 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번 돈에 대해선 법적으로 개인재산으로 인정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함부로 나눌 수 없다. 한국과 전혀 다른 정서다. “한국식으로 한다는 말에 ‘그 말에 책임 질수 있느냐, 그럼 아예 계약서를 쓰자’고 말 했는데 그 얘기가 계약설로 와전된 것 같다”며 김만규 씨는 실소를 머금었다. 결국 그날의 말 한마디에 부녀는 50대 50의 비공식 계약을 맺게 됐다. 내심 “10%만 받아도 호강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김만규 씨는 “농담으로 던진 말 한마디에 평생 든든한 후원자를 두게 됐다”며 박장대소했다. 부녀 계약설의 전말이다. ○“자랑스러운 골프대디” 딸을 골프선수로 키운 아버지를 일컬어 ‘골프대디’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극성스러운 골프선수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자랑스러운 골프선수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바뀌고 있다. 이 말에 김만규 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골프대디’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미국과 다른 정서 때문이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미국이나 한국 모두 같다. 단지 한국의 부모가 자식에게 ‘올인’하는 편이라면 미국의 부모는 성공을 바라면서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처음에 한국의 아버지들이 극성스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딸을 성공한 선수로 이끈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부모들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한국 선수들 활약이 기폭제가 되면서 미 LPGA 투어에서는 폴라 크리머, 나탈리 걸비스(이상 미국), 훌리에타 그라나다(파라과이) 등의 선수들이 부모와 함께 투어에 출전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득과 실을 따질 수 없다. 그건 부모라면 모두 공감하는 얘기다.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성공한 대가를 바라는 부모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딸의 골프백을 메며 투어에서 잔뼈가 굵은 김만규 씨가 생각하는 ‘골프대디’의 자화상이다. 올랜도 인근 그랜드 사이프러스 골프장에서 연습을 끝내고 만난 김초롱은 기자를 만나자 가볍게 포옹하면서 어색한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내면에서 감춰진 한국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올랜도(미국)|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 Clip! ▲한일여자골프국가대항전=1999년부터 개최된 한일여자골프대항전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와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가 공동 주관해 매년 12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린다. 양국 협회에 소속된 선수 13명이 출전해 이틀간 싱글 매치플레이를 펼쳐 우승을 가린다.총상금 6150만엔(2008년 기준) 중 우승팀 선수에게 300만 엔, 패한 팀 선수에게 150만 엔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솔하임컵=미국여자프로골프(LPGA)와 유럽여자골프(LET)가 공동 주최하는 솔하임컵은 1990년 첫 개최된 이래 2년마다 미국과 유럽에서 번갈아 개최된다. 남자 골프의 라이더컵과 비슷한 성격의 대회다. 12명씩 출전해 포볼, 포섬 그리고 싱글 매치플레이로 우승을 가린다. 미국의 유명 골프클럽 회사인 핑의 창립자인 커스틴 솔하임에 의해 처음 개최하면서 솔하임컵으로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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