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등찍은이세돌의몽니…기원과협의안돼컨디션조절실패

입력 2009-0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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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간 랭킹 1위끼리의 대결로, 양국 바둑계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3번기 1국에서 이세돌이 구리에게 졌다. 23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두어진 이날 대국에서 이세돌은 그야말로 힘 한 번 못 써보고 ‘제대로’ 졌다.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마몰살마저 당해 체면을 구겼다. 불과 나흘 전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다 이긴 바둑을 이세돌에게 역전패 당한 뒤 “나는 멍청했다”며 울분을 토했던 구리는 이 바둑을 이긴 뒤 웃음이 귀에까지 걸렸다. 관전자들은 이날 바둑을 두고 “이세돌의 바둑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독기 어린 승부정신도, 예측불허의 감각도, 송곳 같은 공격력도 반상에서 실종됐다. 너무도 무기력한 패배였다. 이세돌의 패배는 컨디션 조절 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사실 고수들의 기량은 종이 한 장 만큼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부분 상대성과 대국 당일의 컨디션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이세돌은 ‘대국당일’ 대국장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백담사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 조절을 한 구리에 반해 이세돌은 대국일인 23일 새벽 2시 30분께 형 이상훈 7단과 함께 백담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2시간 30여 분을, 그것도 택시로 밤길을 달린 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세돌은 농심신라면배 참가차 중국 상하이에 갔다가 20일 선수단과 함께 귀국했다. 대국 하루 전날인 22일 오전. LG배 관계자들과 프로기사들, 중국 선수단은 한국기원 앞에 주차된 백담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떠날 시간이 다 되어도 이세돌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을 취했지만 “아직 자고 있다”라는 아내 김현진 씨의 대답만 들었다. 한국기원 직원은 김 씨에게 “후발대로 오는 승용차가 있으니 그걸 타고 오라”고 전한 뒤 버스를 출발시켰다. 30분 뒤 김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계속 기다리시게 하기 죄송하니 먼저 가시라”는 얘기였다. 이세돌 9단을 기다리던 승용차도 백담사로 출발했다. 문제는 저녁식사가 다 끝나도록 이세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당황한 한국기원 직원들은 부랴부랴 이세돌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밤은 깊어 가는데, 내일 대국을 해야 할 대국자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결국 한 직원이 이세돌의 친형인 이상훈 7단에게 연락을 했고, 형이 이세돌의 집을 찾아가 함께 백담사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이세돌의 돌출행동은 바둑계에서 유명하다. 이번 일에도 어느 정도 이세돌의 ‘몽니’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세돌은 “21일에 먼저 백담사로 가고 싶다는 뜻을 한국기원에 전했으나 거절당해 섭섭했다”고 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세돌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직원은 없었다. 뭔가 서로 사인이 안 맞았던 것이다. 결국 이세돌의 ‘몽니’는 도끼가 되어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25일 이세돌은 구리와 결승2국을 둔다. 24일 하루를 온전히 휴식을 보낸 이세돌이 2국에서는 제 컨디션을 찾고, 본연의 모습으로 얼른 돌아와 주길 기대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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