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품앗이…결혼식은동네잔칫날

입력 2009-03-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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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희 마을에 큰잔치가 있었습니다. 동네 아는 형님이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올해 서른하나인 그 딸은 타지에서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 집 고모가 남자를 소개시켜줘서 이번에 결혼을 한 겁니다. 신랑 되는 사람을 저도 한번 봤는데, 눈매가 선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직장도 탄탄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 집 딸 시집가던 날, 날씨도 잔칫날을 축복해주는지 따뜻하고 화창한 게 꼭 봄날 같았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그 형님네 잔치 일 도와주러 갔는데, 벌써 열대여섯 명의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 집에서 챙겨온 앞치마 두르고, 그릇이며 비닐장갑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뒷마당 평상에 꺼내놓고 있었습니다. 튼실한 장작을 쌓아 그 위에 커다란 솥을 올리고 국수 삶을 물도 끓였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 잔치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잡채를 만들기도 하고, 술안주로 내놓을 땅콩과 오징어채를 담기도 했습니다. 떡과 수정과와 김치 등 많은 음식을 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으매. 홍어가 왔네. 어이구 크다. 이 집 주인이 딸내미 시집 보내니께 기분이 좋은가벼. 손님 대접을 지대로 하려는 가보네. 어이 막내 새댁, 저짝 광에 가서 막걸리 좀 끄네와∼” 그 말에 막내새댁이 광으로 뛰어가고, 모두들 군침을 흘리며 아이스박스에 담긴 홍어를 바라봤습니다. 어릴 땐 엄마랑 제사 때마다 홍어회 껍질 벗기느라 참 고생 많았는데… 엄마가 칼집을 내면 있는 힘껏 홍어껍질을 벗겨야 했습니다. 한번에 쫙 벗겨지면 좋으련만 어릴 땐 참… 그거 벗기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홍어껍질도 벗기고, 먹기 좋게 토막 내서 다 손질 돼서 왔습니다. 잠시 뒤 막내새댁이 들고 온 막걸리에 홍어를 30분쯤 담갔다가 건져서 아낙들은 홍어회를 무치기 시작했습니다. 오이, 도라지, 무, 미나리, 당근 등을 넣고 얼큰한 고춧가루와 새콤한 식초와 달콤한 설탕까지 들어가 맛나게 무쳐댔습니다. 그 때 또 옆에서 누군가가 “어이. 거 뭐시기. 팔 운동 허는 것도 아니고 뭘 그래? 팍팍 무쳐댄디야. 아 맛을 봐야 간을 맞추재. 좀 줘봐” 그러고 한 입 먹고는 “으매∼ 지대로다. 홍어가 아주 그냥 입에 쩍쩍 붙는 게 지대로구먼” 하면서 또 한 사람이 맛을 보았습니다. “아녀. 뭔가가 덜 들어갔어. 쪼매 설탕을 더 넣어야 쓰겄는디…” 그러면 또 옆에서 “아이구 그라믄 너무 달아져 못 써. 이대로가 딱이여… 더 손대지도 말어” 하면서 입씨름들을 해대습니다. 그 때쯤 마당 한 쪽에 국수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한 명이 조금씩 흘려가며 국수를 넣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커다란 주걱으로 국수가 들어붙지 않게 저어줬습니다. 누군가가 “아∼ 식용유도 넣어야재∼ 국시가 서로 다 들러 붙겄네” 하니까 또 막내새댁이 쪼르르 부엌으로 달려가 노란 식용유 통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제 국시 건질거니께 국시 받을 고무대야 허고 채반도 있어야 쓰겄는디” 라고 하자 이번에도 막내새댁이 부엌으로 내리 달렸습니다. 막내새댁이 가져 온 고무대야에 국수를 건져놓고, 찬물로 살살 비벼 헹궈 한 그릇씩 국수를 똬리 틀어 담아놓았습니다. 이윽고 손님들이 몰려들면 “손님이요∼ 한 상 거리 담아주세요∼” 하고 외치면, 국수 그릇에 펄펄 끓는 육수 부어 내가고, 잡채며 떡이며 과일이며 쟁반에 가득가득 담아 음식 나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희 마을이 모두 100가구 정도 되는데, 마을 분들이 거의 다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정신없이 손님을 치르고, 잠깐 한가해졌을 때, 저희는 잠시 자리에 앉아 국수를 먹었습니다. “어이구∼ 국시 국물 시원하다. 그리고 이 홍어회는 누구 솜씨여? 아주 맛나네. 떡도 어느 방앗간에서 한 거래? 아주 이쁘게 잘혔구만” 이러쿵저러쿵 작은 품평회를 열고 아줌마들끼리 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하 호호 그 날의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충남 금산 | 김삼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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