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스쳐가는바람일까,장기적대안인가

입력 2009-03-18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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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독립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를 시작으로 1000만 원짜리 영화 ‘낮술’까지, 주류에 들지 못했던 영상물들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독립영화 붐’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인디에 머물러 있던 감독과 작품들이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독립영화 열풍의 시발점은 농촌 휴먼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서 출발한다. TV용으로 제작됐으나 방송사에 판매하지 못하고 소규모로 극장에 걸린 케이스다. 이후 ‘워낭소리’는 각종 화제를 모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 7개관에서 100, 200개까지 스크린을 늘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불러들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대통령 영화 관람은 정치적인 이슈로 불거졌다. TV ‘9시뉴스’를 통해 동네방네 전파됐다. 흔히 좌파로 분류되는 독립영화계 작품을 보수적 성향의 이명박 대통령이 접했다는 사실은 표면상으로도 정치적으로 보였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소와 노인이 멀뚱히 한미 FTA 반대 피킷 시위를 바라보는 장면을 기억하며 정치적 함의를 의심할 수도 있다. 미디어가 앞 다퉈 이 소식을 전하면서 뉴스에 민감한 중장년 관객들이 극장을 점령하기 이르렀다. 안방 텔레비전을 시청하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장년층 관객들은 조용한 극장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낯선 광경이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거대 스크린에서 관람하는 것은 젊은 층 관객들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익숙지 않은 상황이지만 ‘워낭소리’는 묘한 대중성을 발산했다. 노인과 늙은 소의 우정은 ‘세상에 이런 일이’ ‘놀라운 세상’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룰 법한 익숙한 소재다. 내레이터 없이 현장음만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면서도 지루할 틈 없이 극을 편집했다. 노인과 소의 끈끈한 우정을 샘내는 할머니의 질투심은 묘한 3각관계를 형성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낸다. 추임새처럼 삽입된 할머니의 생생한 이야기는 작위적인 내레이션보다 진솔한 느낌을 줬다. 전체적으로는 2년이라는 긴 촬영 기간을 들인 노고가 엿보인다. 시간이 곧 돈인 섭리상 2년을 기다릴 수 있는 상업영화는 없다시피 하다. 거대 자본은 결코 ‘워낭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논리다. 순제작비 1억 원에 마케팅 비용까지 2억 원을 들여 75억여 원(관객 250만 명 이상)을 벌어들인 ‘워낭소리’의 흥행은 고진감래, 새옹지마, 전화위복과 같은 4자성어들에 딱 들어맞는다. ‘워낭소리’의 가치는 워낭소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비주류 독립영화를 관심의 대상으로 바꿔놨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낮술’ ‘할매꽃’ ‘똥파리’ 등 작은 영화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적 토대가 됐다. 제작비 1000만 원으로 유명한 ‘낮술’은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2만 명을 모았다. ‘워낭소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초저예산으로 독립영화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이끌어내면서 어렵고 난해하고 심오할 것이라는 독립영화의 편견을 불식시킨다.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면서도 예쁜 여자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는 ‘낮술’ 속 남자들의 심리는 일상성, 현장감 넘치는 유쾌함을 갖고 있다. 술과 여자의 묘한 공통점도 발견된다. 옆방 여자와의 하룻밤 로맨스, 버스 옆자리에서 만난 운명의 여인 등 홀로 떠난 여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팬터지들을 녹여낸다. 보통 남성의 로망과 팬터지는 한잔 술과 함께 술술 나온다. 위기 속 한국영화의 대안으로 저예산 제작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소지섭, 강지환 주연의 ‘영화는 영화다’의 성공이 바람직한 모범 답안처럼 받아들여졌다. 마찬가지로 독립영화의 성공 모델이 ‘워낭소리’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다양성 영화에 대한 지원 없이는 제2의 워낭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독립영화계의 집단 움직임도 포착된다. ‘워낭소리’는 여러모로 깃발이 됐다. 다큐멘터리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장르적 차원에서는 상업영화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독립영화도 관객과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여기에 마케팅, 홍보 전략을 여타 독립영화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워낭소리’의 성공이 독립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인지 장기적 현상으로 굳어질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가능성의 싹이 튼 현 시점에서 새순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조언만 나오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독립영화만의 순수성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명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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