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그라운드엿보기]상생의남북전…그러나이겨라

입력 2009-03-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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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이다. 개성공단 출입을 합의 없이 자의적으로 중단시키는가 하면 미사일 발사 준비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남북전이 열린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북한은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작년 9월 평양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FIFA 중재로 제3국인 중국의 상하이에서 예선전을 치르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렇게 남북은 정치뿐 아니라 축구에서도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남북축구 교류는 1929년부터 시작된 경평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남북이 분단되면서 1946년 서울대회를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본격적인 A매치는 1978년 방콕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아시아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국가였고,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결국 결승전에서 비겨 공동 금메달을 수상했는데, 북한선수가 우리선수를 시상대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일촉즉발의 신경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1982년 북한은 뉴델리아시안 게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구타사건을 일으켜 국제경기 2년간 출전정지를 당한 후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990년대에는 대립 상황에서도 축구교류는 유지됐다. 비록 일회성 행사에 그쳤지만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렸고,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U-20)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8강에 오르며 한민족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1999년 9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리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으며,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2002년 월드컵 유치 후 단일팀 구성을 위해 당시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이 방북하기도 했다. 2005년 동아시아대회를 시작으로 작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5경기 연속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 FIFA랭킹은 한국이 44위 북한이 107위. 외형적으로는 한국이 앞서있지만 2000년 들어서는 북한이 해외에 진출하는 선수가 생길 정도로 성장해 이제는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남북한 관계가 얼어붙고 거의 모든 교류가 중단된 현 상황에서 이번 코리안 더비는 남북한 모두 본선진출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남북 동반 진출이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날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남북전은 분명 대립이다. 하지만 남북은 모두 이번 경기를 통해 상생을 꿈꿔야한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정국을 풀 수 있는 촉매 역할을 축구가 담당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 종 환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인간의 내면은 무한한 잠재력으로 가득 차 있다. 성공의 열쇠란 내면의 잠재력을 빠르게 찾아 발전시키는 것이다 축구에서도 현재의 결과 보다는 구체적인 축구발전의 잠재력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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