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사커에세이]청소년월드컵혜성들,메시처럼빛나길…     

입력 2009-10-1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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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제1회 세계청소년선수권(U-20)이 시작된 이후 현재 진행 중인 이집트대회까지 모두 17번의 대회가 열렸다.

그동안 이 대회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79년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1987년 유고슬라비아의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1995년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가 그랬다.

청소년월드컵은 이제 국가대표팀과 명문 클럽으로 가기 위한 등용문이 됐고, 선수들은 이를 통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전에는 지금처럼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1977년 튀니지대회에서 소련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베소노프는 3년 뒤 모스크바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월드컵무대를 처음 밟은 것은 5년 후인 1982년이었다.

베소노프의 12년 후배인 러시아의 올레그 살렌코는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대회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오른 지 5년만인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한 경기에 5골을 몰아넣었다.

프로시네츠키와 함께 1987년 칠레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던 다보르슈케르,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즈보니미르 보반 등 크로아티아의 3총사는 월드컵에서 빛을 발하기까지 11년을 기다려야 했다.

1991년 포르투갈의 대회 2연패를 이끌었던 루이스 피구, 후이코스타, 주앙 핀투 등 이른바 ‘황금세대’도 유로 2000에서야 비로소 축구인생의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앞서 언급한 선수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일본은 10년 전 나이지리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고, 당시 핵심 멤버였던 오노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 다카하라 나오히로는 유럽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이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일본대표팀에서 이뤄낸 성과는 이듬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 우승이 전부였다.

2001년 대회의 주인공도 비슷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엘코네호(토끼)”란 별명을 가진 홈팀 아르헨티나의 신성 하비에르 사비올라는 11골로 대회 최다득점 기록을 세우며 두 마리토끼(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를 잡은 뒤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지만, 대표팀의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은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사비올라를 뽑지 않았다. 사비올라는 2006년 독일대회에 출전했으나 3경기에서 1골을 넣는데 그쳤다.

이런 ‘반짝 스타’ 징크스는 2005년에야 깨졌다. 리오넬 메시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떠오른 별이었고, 우승 트로피와 함께 골든볼과 골든슈를 석권했다.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한 메시는 19세의 나이에 독일월드컵에 참가한 데 이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표팀에서 마라도나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은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메시의 절친한 팀 동료이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10번 공격수인 세르효 아구에로는 2007년 캐나다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고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의 선봉장이 될지 모르지만, 선배들과는 달리 순식간에 스타가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국제축구의 흐름을 꿰뚫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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