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씨네 에세이] 같은 소재의 다른 영화 감독의 성찰이 흥행 키

입력 2009-1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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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이었습니다. 몇몇 영화 관계자들이 기자를 찾아왔습니다. 8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강헌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기사가 나온 지 며칠 뒤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오래 전부터 기획해왔다”면서 ‘우선권’을 주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 발표 직후 ‘조폭마누라’의 현진씨네마도 같은 소재의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후 양측은 각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관객이 영화관에서 접한 작품은 현진씨네마가 만든 ‘홀리데이’뿐입니다. 또 다른 제작진은 투자나 배급 등 이런저런 상황에 떠밀려 결국 자신들의 계획을 잠시 보류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보다 약 4년 전인 2000년 가을에도 비슷한 소재의 영화 두 편이 잇따라 개봉했습니다. 10월 말 ‘싸이렌’, 그로부터 2주가 지난 11월11일 ‘리베라 메’가 각각 관객과 만났습니다. 두 영화 모두 방화사건에 얽힌 소방관들의 희생과 처절한 투쟁을 그린 작품입니다.

두 작품은 ‘파이어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강조하며 관객몰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닮은 소재라는 점에서 우려 반, 기대 반의 시선을 낳았고, 개봉 시기까지 맞물린 두 영화는 결국 시너지 효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충무로에서는 같은 소재를 그리는 영화가 거의 동시에 기획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위 두 사례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만하지요. 실상 그 가운데 어느 작품이 먼저 기획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실화를 토대로 하는 영화의 경우 그 ‘우선권’을 따져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저작권이나 판권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사례들은 영화적 소재를 바라보는 제작 관계자들의 시선이 이래저래 비슷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줍니다. ‘영화적 소재’ 혹은 ‘영화적 아이템’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겠지요.

2002년 서해상 남북간 해상 무력 충돌 사건인 연평해전을 그리는 두 편의 영화가 최근 나란히 제작을 공표했습니다.

한 작품은 ‘친구’와 ‘사랑’ 등 화제작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가제)이고, 또 다른 작품은 ‘연평해전’(가제)입니다. ‘연평해전’의 경우 보수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가 참여해 눈길을 모으기도 합니다.

어쨌든 곽경택 감독은 ‘태풍’, ‘연평해전’의 백운학 감독은 ‘튜브’라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만큼 해군 전사들의 치열했던 전투 역시 그들의 솜씨로 실감나게 그려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각각 어떤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고민일 겁니다. 그 고민 속에 담기는 가득한 진정성이 관객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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