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올림픽 키드 장근석 論

입력 2010-01-01 14: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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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만 받은 허세라고? 우리도 치열하게 노력했다"
● 87년생, 외동아들, 어학연수, 그리고 아역배우…
● 만능임을 강요받은 '올림픽 키드'의 독립선언

당신의 세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은 누구였는가.

아이콘을 연예인으로 치환한다면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기자의 경우는 이정재와 정우성이었던 것 같다.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 정도는 꼽아줘야 '좀 있어보였던' 그때. 20대를 90년대에 바친 이들이라면 두 사람은 결코 '쪽팔리지 않은' 대안이라 쳐줄 듯하다. 적어도 강남역의 오디세이에서 힐튼호텔의 파라오, 하얏트의 J.J.마호니즈를 거쳐 줄리아나에 모여들었던, 이젠 40대로 달려가는 왕년의 '튀는 종자'들에겐 그랬다.

지금의 20대에게 묻는다. 미안하지만 군대갔다 온 예비역들은 논외다. 당신의 아이콘은 누구인가.

'없다'고 단언하는 이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또래의 스타를 굳이 아이콘이라고 거창하게 치켜세울 이유가 없는 데다, 솔직히 자존심이 손톱만큼은 상하는 일이니까….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Q:"당신 세대의 아이콘은 누구인가?" A:"없다"

장근석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드라마 '황진이'로 새삼 주목받기 시작한 2006년 11월 어느 시상식에서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인 어찌보면 평이한 차림이었지만, 그 속에서는 무언가 남다름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3년 뒤인 요즘에서야 멋쟁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된 하이 탑 슈즈를 신고, 흔히 고적대를 연상하면 쉽게 그려질 밀리터리 풍의 상의를 걸쳤던 그. 어느 유명한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쳤을 것이란 항간의 짐작을, 당시 만 19세였던 이 청년은 "그냥 알아서 챙겨 입고 나왔다"는 말로 보기 좋게 깨버렸다.

2008년 KBS '쾌도 홍길동'에서 비운의 왕자로 등장한 장근석. 그는 사극과 현대극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배우 근성을 치열하게 뽐내왔다.(사진=KBS '쾌도 홍길동')


장근석은 세대를 뛰어넘는 친구이기도, 또한 연구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들썩였던 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어느덧 20대가 된 이른바 '올림픽 키드'의 표본이나 다름없다.

외동아들, 짧지만 조기유학이라 할 수 있는 연수 경험, 대규모 단지 내 고교라면 응당 존재하는 교육열의 수혜자이자 희생양. 아주 어린 나이에 아역 배우로 연기활동을 시작했지만,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라는 듯 예외란 없었던 그 또래의 성장과정을 그 역시 고스란히 거쳤다.

마지막 학력고사에 마지막 방위로 복무했던 '막차 인생'이 70년대 중반 생들의 아이덴티티를 결정짓는 것은 결단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급증과 허무함으로 대변되는 공통의 성정(性情)상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단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장근석에게도 그런 게 존재하지 않을런지.

▶87년생, 외동아들, 어학연수, 그리고 아역배우…

최근 4년간 그는 꽤 쉼없는 행보를 보였다. 나름 일 좀 한다는 배우의 척도와도 같은 '한 해 드라마 한편, 영화 한편 출연'을 꾸준히 지켜온 데다 기회가 닿는 대로 노래를 익혀 음반까지 내놓았다.

검색 사이트가 소개하는 장근석의 프로필은 본업인 배우로서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노래 취입, 심지어 방송 프로그램 진행까지 이력서로 치면 '한바닥'을 넘긴 지 오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에 탄생한 세대를 '올림픽 키드'로 부른다. 이들도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이르렀다.

혹자는 의문을 표한다. 아직 아이돌 스타로 유효한 그의 숨 가빴던 지난 몇 년은 누군가가 시켜서 이렇게 된 것인지, 그렇다면 또래의 스타들처럼 만들어진 것인지….

각설하면, 그가 "빅 브라더"(big brother)라 부르는 몇몇 숨은 조력자들은 존재하나, 결정의 주체는 온전히 장근석이었고 장근석이란 이미지를 만든 것도 장근석이었다.

1년 전 이맘때쯤 서울 청담동 언저리의 삼겹살 집에서 그와 만나 나눈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 부족해서 생긴 조급증인가'였다.

필자는 조금 먼저 태어난 세대가 뒷세대를 향해 '나보다 더 누리고 자랐던 네가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란 마음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보다 더 알차게 사는 듯해 약간은 얄미운 마음을 섞어서, 여기에 못내 안쓰러운 마음도 담아 이젠 속도 조절 좀 해가며 '묘수'를 둬야 하는 것이라 충고했던 것 같다.

그의 논리는 그랬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여기에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던지는 '딴지'를 '영리한' 장근석은 간파한 듯, 자기 세대의 현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학을 완벽하게 나와도 취업이 어려워요. 영어도, 뭣도 따야 하고…'완전' 치열하다고요. 그래서 배우 장근석도 치열하게 사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게 '트렌드'인걸."

2006년 KBS '황진이'에서 하지원과 호흡을 맞춘 장근석.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올림픽 키드의 필모그래피에는 쉼표가 없다.


▶ "우리 세대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한때 장근석은 몇 차례의 '기행'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연말 행사에서는 헤드윅으로 여장을 하고선 가슴에서 느닷없이 토마토를 꺼냈고, 어떤 날엔 장발의 가발을 뒤집어쓰곤 대중 앞에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의도된 것이었냐고?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시각적 강도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론까지 감안해 그의 주변은 왜 조마조마하지 않았겠는가. "시상식이 이렇듯 '포말'(formal)하기만 해서야…"라는 장근석의 변에 그들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그렇다고 이러한 행동이 한때의 철없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냐면 결단코 아니다. '놀랍게도' 장근석은 이를테면 '스타는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직업관을 갖고 있다.

"진지하면서도 멋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이젠 '싼 티'로 불리는 "가벼운 면도 공존해야 하는" 스타. 더욱이 영어도, 연기도, 스타일도, 노래도, 예능도, 춤도 다 잘해야 한다. 장근석 또한 만능이길 강요받는 '올림픽 키드의 생애'를 살고 있었다.

"우리 세대의 그 누가 스타를 동경하겠어요. 친근하고, 때론 의외이길 바라는, 다만 매스컴에 나오는 친구, 그게 미래의 스타가 아닐까…."

최근작인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장근석은 아이돌 스타를 연기했다. 가상의 아이돌 그룹 리더 '태경'이 그가 맡았던 역할. 얼핏 2009년 상반기를 강타한 '꽃남'의 대항마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태경이 구준표의 재판은 아니었다. 장근석만의 무엇이 존재했다.

'베바' 강마에부터 '스타일'의 박기자, '선덕여왕'의 미실까지 까칠한 말투에 굳이 꼬집자면 '외강내유'인 캐릭터가 대세인 이 상황에서 장근석의 태경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대중에게 큰 점수를 받게 된 배경은 20대 배우 역시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메소드 연기'가 가능하단 점을 실현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장근석이란 스포츠카는 5단을 놓고 쉼 없이 달려왔다

'꽃남' 구준표를 대신해 '베토벤 바이러스'를 선택했던 그. 연기자도 자연스레 작품 속에서 나이를 먹듯, 세월은 눈 깜짝할 새 흐르는지라 장근석은 어쩌면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잠시 스톱워치를 걸어놓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그가 아이돌을 연기한 진짜 소감은 아이러닉했다.

배우 장근석은 아이돌 대폭발 시기 후배들이 참고해야할 가장 훌륭한 교과서일지 모른다.(스포츠동아 임진환)


"아이돌 스타를 연기하면서 좀 더 어른의 세계에 한발짝 다가섰다고 할까요. 저 또한 아직은 이렇다 정의할 순 없는 변화가 분명 생겼어요."

자동차가 모든 남자의 로망이듯, 장근석 또한 자동차를 좋아한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장근석이란 스포츠카는 4년간 5단을 놓고 쉼 없이 달려왔다. 고속질주를 위한 성능 개선은 있었지만, 작년과 올해가 판이하게 다른 '페이스 리프트'(Face Lift)는 '아직'이었다.

장근석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크게 흔들지 않았기에, 그는 이 험난한 경주에서 생존을 넘어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때가 왔다. 조인성이, 소지섭이 그랬듯이 장근석도 어느 순간엔 확연히 달라진 장근석으로 거듭날 때가…. 장근석의 올 한해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포츠동아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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