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제복이 존경받는 사회]<上>명예로운 선진국 MIU

입력 2010-04-0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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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부르면 기꺼이 목숨을 던지고,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용감히 뛰어들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 경찰 소방관과 같은 ‘제복을 입은 대원들(MIU·Men In Uniform)’이다. 미국 유럽에서는 국가를 위해 숨지거나 다친 MIU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전 국민이 공유하는 애국심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안전을 위해 몸을 던진 MIU들이 한때 영웅 대접을 받다가도 한두 달이면 잊혀지고,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진국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침몰된 천안함으로 내려가다 숨진 고 한주호 준위의 희생이 국가를 위해 순직한 MIU가 대접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선진국의 MIU에 대한 존경의 전통이 어디서 왔는지 짚어봤다.》


■ 자랑스러운 군인
美 ML 개막전에 상이용사 초청… 경찰 숨지자 弔旗
6·25때 포로로 잡혔던 노병 “국가가 구해줄거라 믿었다”
정치인 자녀 군입대 영예로

6·25전쟁 당시 중공군에게 생포돼 22개월간 포로생활을 한 노병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렸다. 1951년 11월 임진강변 연천 석고개 전투에서 48명의 소대원을 이끌고 800명이 넘는 중공군과 맞섰던 당시 제임스 스톤 중위는 포격과 소총 사격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세 차례나 총상을 입고도 자신의 소대원을 한 사람이라도 무사히 퇴각시키려고 애썼다. 만 10시간이 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다음 날 동틀 무렵 포로가 된 스톤 중위는 소대원 6명과 함께 압록강변의 중공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가 1953년 9월 포로교환 때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명예의 훈장’을 받고 대령으로 예편한 스톤 씨(88)는 웃음을 지으며 “극한의 공포와 생명을 담보로 한 전장에서도 결국 국가가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것이 나를 지켜준 힘”이라고 말했다. 현재 텍사스 주에 거주하는 스톤 씨는 “국가에 대한 봉사는 결국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으로 돌아왔고, 나는 아직도 내가 한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오전 4시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제 막 착륙한 C-17 수송기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섰다. 잠시 후 수송기의 문이 열리고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전사한 장병 등 18구의 유해가 담긴 관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고 18구의 운구가 끝날 때까지 눈썹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순직 경찰 추모 1792년 이래 순직한 경찰관 1만86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워싱턴 국립법집행관기념관. 사진 제공 국립법집행관기념관

순직 경찰 추모 1792년 이래 순직한 경찰관 1만86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워싱턴 국립법집행관기념관. 사진 제공 국립법집행관기념관

5일 미국 전역에서 개막된 프로야구 개막전은 미국 사람들이 가진 군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존경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미국에서 4월은 군대에 간 부모를 두고 있는 자녀들을 위한 군인자녀들의 달. 현재 17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워싱턴 연고팀인 내셔널스는 군인 자녀 중 9명을 뽑아 팀의 주전 9명과 함께 경기장에 설 수 있게 해줬다. 이날 시구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도 군 자녀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했다.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의 부상 장병 1명씩이 상징적으로 소개됐다. 수많은 귀빈 중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포옹을 한 것도 제복을 입은 장병들이었다.

유력정치인들의 자녀들도 군 입대를 자랑으로 여긴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의 아들과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아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아들은 이라크에서 복무 중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조카 역시 미군에서 장교로 있다.




■ 사랑받는 경찰
순직 경찰 장례땐 대통령급 이상 에스코트
워싱턴 ‘법집행관기념관’…순직경관 이름 대리석 새겨
“일한 만큼 시민들이 예우”


4일 오전 2시 20분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소속 헥터 아얄라 경관(31)은 동료 경찰관의 지원요청을 받고 비포장도로에서 급하게 차를 돌리려다 나무를 들이받았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생후 14개월 된 아들과 배 속에 세쌍둥이를 가진 부인을 둔 아얄라 경관의 사망 소식에 메릴랜드 주정부는 즉각 전 관공서의 주기(州旗)를 조기로 게양할 것을 명령했다.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해 지역 히스패닉 사람들 사이에서 ‘아미고(친구)’로 불려 온 그의 장례식은 8일 오전 볼티모어 시 근교에 있는 성당에서 열린다. 조기는 그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 해가 질 때까지 펄럭이게 된다.

몽고메리 카운티 경찰 관계자는 “메릴랜드는 물론이고 워싱턴과 버지니아 주 경찰도 경찰차량에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를 표하게 된다”며 “카운티에서만 300여 대의 경찰차량이 장례식장에 모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얄라 경관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케네스 한 경관도 “미국 대통령의 호위 행렬보다 3, 4배 많은 경찰 에스코트 행렬을 연상하면 된다”며 “시민들도 순직 경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연도에 도열하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순직 경찰관의 이름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국립법집행관기념관(National Law Enforcement Officers Memorial)에 있는 청회색 대리석에 새겨져 미국인들의 영웅이자 친구로 영원히 추앙받는다. 100m 길이의 두 개의 장벽에는 1792년 이래 근무 중 유명을 달리한 1만86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하다. 입구에 있는 어미 사자가 두 마리의 아기 사자를 굽어보는 형상은 경찰이 시민들을 사랑으로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쉬는 날 없이 365일 워싱턴을 찾는 사람들에게 개방되는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이곳에는 연간 25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또 1962년 이래 해마다 5월이면 워싱턴 시내 한복판에서 경찰 행사가 열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법으로 정해진 이 행사에는 매년 2만 명 이상의 시민이 참석해 매년 순직 경찰관들의 명복을 기리고 시민들의 질서와 안전을 지키는 경찰에 감사를 표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물론 경찰이 마냥 사랑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무자비한 법집행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소수인종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워싱턴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의 사랑은 당연한 것은 아니며 우리가 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친근한 소방관
“부츠에 돈 넣으시오” 알고보니 자선행사
학교 소방교육 등 대중접촉
불우아동 돕기 시민 축제로
‘존경하는 직업’ 최상위권


주민과 함께 지난해 9월 7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부츠를 채워라(Fill The Boot)’라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 소방관들은 52년째 영양실조 아동 돕기 자선모금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페어팩스카운티 소방서

주민과 함께 지난해 9월 7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부츠를 채워라(Fill The Boot)’라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 소방관들은 52년째 영양실조 아동 돕기 자선모금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페어팩스카운티 소방서

지난해 9월 7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주요 간선도로 교차로마다 제복을 입은 소방대원들이 손에 소방부츠를 들고 신호대기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차량으로 다가섰다. 차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반가운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부츠에 집어넣었다. 언뜻 보니 친구 사이처럼 서로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고 차에 탄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모금하는 것 같기는 한데 소방관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가 궁금해 기자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접근하는 소방관에게 물었다. 섭씨 30도에 가까운 더위인데 제복을 입고 있던 터라 땀으로 옷을 흥건하게 적신 비터 로차 소방관(47)은 “벌써 52년째 소방대가 벌이고 있는 영양실조 아동 돕기 자선모금 행사”라며 “‘부츠를 채워라(Fill The Boot)’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연례행사”라고 말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모금액 면에서 전국 상위권에 드는 모범 소방서로 매년 거리에서만 40만∼50만 달러를 모으고 있다. 시민들이 소방관을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페어팩스 카운티 소방대는 아이티 지진사태가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도 가장 먼저 구호활동을 위해 현장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소방관들은 일반 대중과의 접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버지니아 주정부 청사에서 열린 가을 축제기간 중에 주 소방당국은 소방차 2대를 현장에 출동시켜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소방차의 구조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시승 행사도 가졌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소방관용 헬멧과 모형 소방차 등도 나눠주면서 친근한 이미지를 더했다. 공보를 담당하고 있는 윌리 베일리 소방관은 “초중등학교는 물론이고 3세에서 5세까지의 미취학 아동들을 돌보는 프리스쿨까지의 학교를 대상으로 기초 소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소방관들과 친근해지는 기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소방관에 대한 존중과 예우는 각종 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특히 2001년 9·11테러 당시 소방관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구조의 모습은 많은 미국인을 감동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2006년 7월 포브스는 전국 성인 남녀 1023명을 대상으로 23개 직업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3%가 소방관을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으로는 의사, 간호사, 과학자, 교사 순이었다. 2005년 5월 유에스에이투데이 조사에서는 소방관이 과학자와 의사에 이어 세 번째였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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