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남편에게 버림받은 동두천 기지촌의 필리핀 여성들

입력 2010-04-27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미군클럽에 매인 몸…날아간 코리안 드림
말없이 떠나간 사람…깨진 아메리칸 드림
남편 찾아 준다지만 기약없는 기다림뿐
스러져간 가수의 꿈…쓰러져가는 싱글맘


벌써 8번째 편지다. 멜리사(가명·30)는 받는 곳 주소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리 내 읽었다. ‘미국 인디애나 주 엘크하트 스테이트 로드 11번지.’ 보내는 곳은 경기 동두천시. 지난해 10월부터 인디애나로 매달 같은 편지를 부쳤지만 답장은 아직 없다.

우체국을 나온 멜리사는 직장으로 향했다. 미2사단 캠프 케이시 맞은편에 있는 외국인 전용 클럽. 4월 중순이 훌쩍 지난 21일, 낮 기온은 19도까지 올라갔지만 그는 진회색 파카를 입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에겐 아직 겨울이었다.

클럽에 들어서자 백발의 한국인 ‘엄마’가 소리친다. “빨리 빨리 안 다녀!” 멜리사가 가장 먼저 배운 한국말이다. 클럽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양쪽으로 늘어선 8개의 방은 깔끔하게 정돈된 채 환기 중이었다.

 

6년 전 한국에 도착하던 날, 멜리사는 그 방 중 하나가 자기 방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방에 들어갈 땐 언제나 미군 손님과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멜리사는 복도 끝 오른쪽 방에 들어갔다. 동료 여종업원 8명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수요일인 오늘은 검은색 옷을 입는 날. 클럽 홀에 나온 멜리사는 속살이 비치는 검은색 망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주스 할당량 못 채우면 손님과 ‘2차’

미군 손님들이 올 때마다 멜리사는 옆자리에 앉아 말을 붙였다. 그가 카운터를 향해 환하게 웃으면 한국인 ‘엄마’가 종이컵만 한 유리잔에 파인애플 주스를 담아 가져왔다. 주스를 한 잔 마실 때마다 멜리사는 빨간 도장을 찍은 모양의 쿠폰을 한 장씩 받았다.



“우리가 손님들에게 한 잔에 10달러 하는 주스를 사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한 잔 팔아줄 때마다 쿠폰이 1장씩 우리한테 떨어져요.”

클럽 폐장 시간인 자정이 다가오자 멜리사는 “오늘 쿠폰을 7장밖에 못 받았다”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한 달에 주스를 300잔씩 팔아야 하는데 할당량을 못 채우면 30만 원 남짓한 기본급이 깎이고, 많이 못 미치면 필리핀으로 돌려보낸다고 할 거예요.”

멜리사가 클럽에서 남편을 만났던 4년 전에도 그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주스만 팔아서는 매달 300장의 쿠폰을 모을 수 없었던 그에게 선택은 손님들과의 ‘2차’뿐이었다. 일명 ‘바 파인(bar fine)’이라고 불리는 성접대를 하면 한 번에 20장의 쿠폰을 받기 때문이다.

몸을 팔아야만 한다면 한 남자와만 관계를 맺자는 것이 멜리사가 짜낸 고육책. 그는 유독 자신에게 친절했던 한 미군 손님과 연애를 시작했고 쿠폰 압박을 받을 때마다 그와 ‘2차’를 나갔다. 6개월의 열애 끝에 그 미군 병사와 결혼을 하면서 멜리사는 클럽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결혼 당시 남편의 나이는 7세 연하인 스무 살. 남편이 매달 생활비로 준 돈은 10만 원이었다. 실제 생계는 멜리사가 해장국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번 돈으로 유지했다. “남편은 월급만 받으면 클럽에서 술 마시며 놀기를 좋아했어요.”

그래도 멜리사에겐 희망이 있었다. 남편은 “몇 달 뒤 본국으로 복귀하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자”고 습관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남편과 미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꿈은 멀어지기 시작했다.

멜리사가 미국행을 앞두고 필리핀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한국에 돌아온 날이었다. 그는 남편에게 깜짝 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리핀에 가기 얼마 전 병원에서 임신 3개월 진단을 받은 것. 하지만 집에 남편의 짐이 없었다.

결혼 후 클럽은 탈출했지만…

“남편이 집에 급한 일이 생겨 미국에 가야 해서 짐을 부대로 옮겨놨다고 했어요.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까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이후로 연락이 끊겼어요.”

졸지에 이국땅에서 싱글맘이 된 멜리사. 남편이 한국을 떠나면서 미군 가족비자도 자동 만료돼 불법체류 신분이 됐고 결국 클럽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휴일 없이 꼬박 일해도 한 달에 버는 돈은 70만 원 정도. 그 돈의 반은 보모 월급으로 쓰인다.

집 월세를 빼고 나면 10만 원으로 한 달 식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 폐렴을 앓고 있는 딸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보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병원비로 다 썼다. 양육비라도 받기 위해 미군부대를 수없이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편 소속 중대 상사를 어렵게 만났는데 더는 자기 병사가 아니라며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렵고, 위치 파악이 되더라도 어떻게 하라고 압박을 할 수도 없다’더군요.”

그때부터 멜리사는 혼인신고서에 기재된 남편의 주소지에 세 살 된 딸의 돌 사진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있다.

한가닥 희망 ‘남편 찾아주는 프로그램’

인터뷰를 하는 동안 멜리사의 딸은 엄마 팔을 잡고 늘어지며 나가서 놀자고 보챘다. 한국 생활 6년 동안 그가 동두천을 벗어나본 건 비자 문제로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 가본 게 유일하다고 했다.

다행히 멜리사는 최근 한 가닥 희망을 걸게 됐다. 주한미군이 도망간 미군 남편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올 1월 시작했기 때문. 전용 연락망(0505-730-3635)을 통해 남편을 찾아 달라고 신고하면 군 당국이 남편의 위치를 파악한 뒤 필요한 절차를 안내해주는 것이다.

다만 대상자가 되려면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춰야 한다. 미2사단 브랜다 매콜 담당관은 “일단 미군과 결혼한 여성이어야 하고 미 국방부에서 발급한 ID카드와 유효한 비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결혼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거 상태에서 낳은 자녀의 경우 미군 자녀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해당 미군의 확인 서명이 필요하다. 이미 도망간 미군으로부터 서명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DNA 테스트 등 별다른 친자 확인 절차는 없는 상태다.

미군 배우자만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이번 프로그램이 미군에게 버림받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결혼 후 출산보다는 동거 단계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기지촌 주변 외국인 여성들의 상담소인 두레방 쉼터 박수미 소장은 “미군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 없이 결혼 여성으로 프로그램 대상을 한정할 경우 미군들이 같은 피해를 주면서 결혼만 피하는 사례가 오히려 늘 수 있다”고 말했다.

할당된 쿠폰 수를 못 채울 땐 서로 품앗이하며 동고동락했던 멜리사와 그의 친구 재키(가명·29). 하지만 재키는 주한미군 프로그램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다. 미군 남성과 동거 중에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2006년 재키의 임신 소식을 들은 미군 동거남은 한 달 뒤 월급이 나오면 중절 수술을 시켜주겠다며 훈련을 떠났다. 그러곤 연락이 끊겼다.

몇 개월 뒤 평소 알고 지내던 미군 장교를 통해 동거남의 주소를 알게 됐고 아들 양육을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동거남은 넉 달 만에 보낸 답장에서 “아기용품을 보내고 싶다”며 집주소를 물었다. 연락이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떠 있던 어느 날. 기다리던 아기용품은 오지 않았고 그 대신 출입국 단속반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알고 보니 제 주소를 파악한 전 애인이 카투사 친구를 통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를 했더군요. 나를 추방시키고 아이만 데려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당시 클럽 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던 재키는 사업장 이탈로 신고돼 불법체류 상태였다. 단속반원들이 집에 왔을 당시 아들과 함께 슈퍼에 갔었던 재키는 슬리퍼 차림으로 아들을 안고 도망쳤다.

아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단칸방으로 옮겨와 숨어 지내고 있는 재키는 지금 두레방의 도움으로 미국 현지 법원에서 양육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재키가 ‘은신 투쟁’을 벌인 4년 동안 미군 동거남은 부대에 아들의 인적사항을 등록하고 자녀 수당으로 매달 220달러를 꼬박꼬박 받았다. 가족을 두고 도망친 가장에게도 가족수당과 자녀수당은 예외 없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획사 치열한 오디션 뚫었는데…

일본에서 가수로 일했던 재키는 연예인 비자 제도가 중단돼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가수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클럽에서 만난 미군과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지금은 야채공장에서 포장 일을 하고 있다.

불법체류 신분으로 숨어 지내며 남편이나 애인을 찾는 외국인 중 상당수는 마땅한 거처가 없어 두레방 등 시민단체가 마련한 쉼터에서 지낸다. 멜리사나 재키 같은 처지의 이들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가수 지망생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필리핀 현지 기획사의 권유로 오디션에 응시해 치열한 경쟁을 뚫은 여성들이다.

쉼터에서 만난 조이스(27)는 “세 번의 오디션 끝에 합격했을 때 펄쩍펄쩍 뛰며 ‘오마이 갓’을 연발했다”고 말했다.

멜리사도 외국인 관광 진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흥행(E-6) 비자를 어렵게 손에 쥐었을 때 마음껏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할 무대를 상상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한 당일 저녁부터 멜리사는 미군 부대 주변 클럽에 배치돼 접대부로 일해야 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기획사에서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상황을 알았다면 한국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도 뛰쳐나왔을 거예요.”

한국행을 결정할 당시 멜리사는 필리핀의 한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다 학비가 부족해 휴학하고 기업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등록금을 벌어 대학을 졸업하려 했던 그의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2003년 한국 내 러시아 여성들의 매춘행위 등이 문제가 되면서 러시아인에 대한 예술흥행 비자 발급이 중단됐지만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선 비자가 계속 발급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필리핀 여성들을 관리하는 연예 기획사의 계약서와 오디션 동영상 등을 심사하지만 입국한 여성들이 계약대로 활동하는지는 확인할 권한이 없다. 비자발급을 하는 출입국관리소에서 사후 감독을 해야 하지만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쟁 60주년… ‘양공주’ 비극은 현재형

기지촌 클럽에서 접대부로 일하며 미군 남편을 만났다가 버림받은 필리핀 아내와 자녀들. 외견상으론 외국인들 사이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들이 만나고 헤어지게 된 구조적 기반은 한국인이 만든 것이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값싼 성노동자로 외국인을 수입한 것도 한국 사람이고, 그 과정을 중재한 것도 한국 사람이고, 그들이 일하는 곳의 업주도 한국 사람이라면 이것은 우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6·25전쟁 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로부터 외화를 버는 창구로 운영됐던 우리의 기지촌. 전쟁 60주년이 됐지만 기지촌의 생태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양공주’들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미군 남편 찾아주기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교수는 “오키나와는 물론이고 독일의 경우도 미군이 오래 주둔해 왔지만 미군기지 옆에 이렇게 기지촌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이것이 2010년 대한민국의 국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가수로 코리안드림을 꿈꿨던 재키는 단칸방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며 한국생활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었다. “18번(애창곡)이 뭐냐”고 묻자 그는 아들을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노래를 시작했다.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 말했을 때(When you told me you loved me).’ 미군 애인이 재키에게 전화를 걸어올 때 휴대전화 연결음이었던 곡이다. 왼쪽 가슴에 미국 국기가 박힌 잠바를 입은 아들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 기사는 27일 오후 5시부터 동아일보의 인터넷 방송뉴스 ‘동아뉴스스테이션’(station.donga.com)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기존 기사 형식으론 소화하기 힘든 삶과 현장을 담는 새로운 기사 형식입니다. 생생한 현실과 감성을 통해 세상사를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