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⑧ 이정수] ‘킬러잡는 독종’ 독기 품은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입력 2010-06-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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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꼼짝 마”  큰 키와 빠른 발을 이용한 대인마크가 주특기인 이정수가 북한 공격의 핵 정대세를 밀착마크하고 있다. 지난 해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5차 예선 북한과의 경기 중 정대세와 볼을 다투고 있는 이정수(왼쪽). 
스포츠동아 DB

 “정대세 꼼짝 마” 큰 키와 빠른 발을 이용한 대인마크가 주특기인 이정수가 북한 공격의 핵 정대세를 밀착마크하고 있다. 지난 해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5차 예선 북한과의 경기 중 정대세와 볼을 다투고 있는 이정수(왼쪽). 스포츠동아 DB

2008년 3월26일은 이정수(30·가시마 앤틀러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것.

‘인민 루니’정대세(26·가와사키 프론탈레) 봉쇄임무를 띤 이정수는 허정무 감독의 믿음을 사며 중앙수비 요원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185cm의 큰 키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대인마크가 장점. 초중고 시절 공격수로 활약한 덕에 공격력과 넓은 시야까지 갖췄다.

남아공월드컵은 늦깎이 스타 이정수의 첫 번째 월드컵이다.


○ 외로운 독종
이정수 성장앨범. 스포츠동아DB

이정수 성장앨범. 스포츠동아DB


“정수 형이요? 독종이죠. 지금 생각하면 중고교 때도 남보다 더 많이 훈련하고 땀을 흘렸던 것 같아요. 고교 때 일인데 훈련이 끝나고 혼자서 운동장을 수십 바퀴씩 돌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갑자기 키가 커져 스피드가 떨어진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혼자서 연습한 거였어요. 몇 달을 그렇게 했는데,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렇게 못했을 겁니다. 진짜 독하죠.”

이정수와 초중고 시절을 함께 보낸 용인 포곡초 남정현(29) 감독은 선배 이정수를 ‘독종이지만 외로운 남자’로 기억하고 있다.

“타고난 천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독기 하나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거예요. 축구선수가 되기엔 부족한 게 많았지만 그런 힘든 점을 혼자 이겨내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랐죠. 학창시절이나 프로가 되서도 여러 번 고비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가 오기와 근성으로 잘 버텼어요. 진짜 땀 흘려 만들어진 선수죠.”

이정수는 축구 밖에 몰랐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지 못했던 탓인지 유독 축구에만 매달렸다. 고교 시절에는 한살 터울의 누나가 거의 뒷일을 봐줬을 정도. 그래서인지 남보다 외로움을 많이 탄다.



남 감독은 “축구 이외의 얘기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죠. 고교시절까지 항상 정수 형과 같은 방을 썼는데 잠을 자기 전에는 꼭 라디오를 듣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외롭게 느껴진 적이 많았어요.”


타고난 천재? 외로운 독종!


외로운 학창시절…오기·근성으로 버텨
스피드 보완 위해 밤마다 남몰래 땀방울
경기서 지면 눈물 펑펑…승부욕도 강해



○ 결승전 지고 나서 ‘엉엉’

이정수가 처음 축구화를 신은 건 용인 포곡초등학교 3학년 때다.

학교에 갓 축구부가 생겼고, 지도를 맡은 강순준 감독(54·현 용인 동백중 행정실 주무관)이 각 반을 돌아다니며 선수를 뽑았다.

이정수는 이때 강 감독의 눈에 띄었다.

“겉모습은 순둥이처럼 보였지만 근성이 있어 보였죠. 그래서 뽑았는데 축구에 소질까지 있었어요. 공을 잘 차기도 했지만 승부욕이 좋았어요. 상대에게 공을 빼앗기면 끝까지 따라가서 다시 공을 뺏어왔거든요.”

강 감독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들려줬다.

“6학년 때의 일이죠. 전국 초등학교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결승까지 올라갔죠. 정수가 워낙 잘했어요. 6게임에서 7골을 넣었거든요. 결승에서 전남의 장흥국민학교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는데 그때 정수를 안고 둘이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승부근성 하나는 대단하다는 걸 느꼈죠.”

이정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옛 스승을 찾아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고교시절에는 중학교 은사 김광겸 체육부장(용인 태성중학교)을 찾아가 “축구를 포기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가 호되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해서 야단을 쳤더니 얼마 후 대회에 나가서 한 게임에 무려 5골을 넣었더라고요. 얼마나 기특하던지….”

2년 전 겨울에는 한밤중에 동네 주민들과 축구를 하고 있는 강 감독을 찾아왔다. 아무 말도 없이 왔다가는 골키퍼를 봐주고 늦게 돌아갔다.

수원 삼성을 그만 뒀을 때다.


○ ‘골 넣는 수비수’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서른의 월드컵 첫 무대


월드컵亞예선 北 정대세 꽁꽁 묶어 두각
대표팀서 2골…‘골넣는 수비수’ 명성도
제공권 능력 탁월 “그리스전 걱정 없다”


2002년 첫 입단한 안양LG(현 FC서울)에서 이정수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초중고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다 대학과 프로에 들어가 수비로 전환하면서 혼선이 생겼다. 이정수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인천 유나이티드(2004년)로 이적하면서부터다. 이후 수원 삼성(2006년)으로 이적하면서 뛰어난 중앙수비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8년 3월26일은 이정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A매치에 나섰다.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북한전에서 북한 공격의 핵 정대세의 두 발을 꽁꽁 묶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비수지만 공격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초중고 시절 공격수로 활약했던 덕에 골 감각이 뛰어났다. 2009년 J리그 교토 퍼플상가 시절엔 32경기에 나가 5골을 터뜨렸다. 2009년 5월 상암에서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서는 감춰뒀던 득점력을 뿜어냈다. A매치 출장 13게임 만에 첫 골을 기록하며 골 넣는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이정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남아공에서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아요.”

첫 상대 그리스는 우리보다 신장이 크지만 스피드가 떨어진다. 빠른 스피드와 제공권이 좋은 이정수라면 그리스 공격수의 제공능력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정수 프로필


생년월일=1980년 1월8일 출생지=경기도 용인
출신교
=용인 포곡초∼태성중∼이천실고∼경희대
체격
=185cm 몸무게=76kg 혈액형=A형 포지션=DF
프로경력
=안양LG(2002∼2004)∼인천 유나이티드(2004)∼수원삼성(2006∼2008)∼일본 교토 퍼플상가(2009)∼일본 가시마 앤틀러스(2009∼)
수상경력
=2009 조모컵 최우수선수
대표팀 경력
=U-19청소년대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대표
A매치 경력
=24경기 2골 월드컵 출전경혐=무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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