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⑥ 오범석] 축구 밖에 모르는 악바리…“중원전쟁 맡겨만 다오”

입력 2010-06-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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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일까.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에 첫 도전장을 내민 오범석(26·울산 현대)의 심장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그라운드를 향해 터질 듯이 뛰고 있다.

옥동초등학교 5학년 축구부 시절 축구화를 처음 신었을 때부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기까지. 월드컵이라는 아들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묵묵히 지켜봐 온 오범석의 아버지 오세권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 위원과 어머니 이애숙 씨. 그들이 들려주는 오범석의 축구 성장기를 스포츠동아가 살짝 들여다봤다.


● 초등학교 5학년 꼬마, 축구화를 신다

오범석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체육교사의 제의로 그는 울산 옥동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축구 밖에 몰랐다.

어머니 이 씨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보다도 축구를 좋아한 아이였다. 하루 종을 공을 찼는데도 밤에 들어와 ‘오늘은 너무 공을 못 찼다’며 아쉬워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울산 학성고 축구부 감독이었던 아버지 오 씨는 아들이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누구보다 축구계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범석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축구를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나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한번은 시험에서 평균 95점을 받아 오라고 했어요. 축구 선수는 축구도 잘 해야 하지만 공부도 잘해야 한다면서. 사실 무리한 요구였죠. 하지만 이 녀석이 정말 다음 시험에서 평균 95점이 넘은 성적표를 갖다 주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축구 포기하라는 말을 안했던 것 같아요.”(아버지)


● 순한 양 같은 아들, 집념은 최고.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울산으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전학 간 학교를 다녀 온 오범석이 대뜸 “엄마, 나 딱 일주일 동안만 싸움 할지도 몰라요”라고 한 사건이 있었다. 사연인즉슨 전학 온 오범석을 남학생 몇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범서이’라며 놀리며 텃세를 부린 것.

크면서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던 아들이 싸움이라니, 크게 놀랄 법도 한데 이 씨는 오히려 아들의 승전보를 기다렸단다.

“일주일이라던 범석이가 5일만에 ‘어머니 저 싸움 끝났어요. 저 놀리던 애들 다 제 편 됐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반에서 ‘1대장’이 됐대요. 또래보다 키가 작았는데 집념 하나는 정말 최고였어요. 동네 형한테 맞고 오면 끝까지 따라가서는 사과를 받아 오더라고요. 요즘도 축구할 때 공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악바리였던 모습이 가끔 떠올라요”(어머니)


● 청소년 대표 시절, 그리고 첫 시련

지능적이고 빠른 플레이에 강했던 오범석은 2003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발탁됐다. 하지만 오범석의 예상치 못한 첫 시련은 여기서 시작됐다.

늘 팀의 주전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오범석은 청소년 대표에 발탁된 후 한참 동안 벤치에서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당시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오범석은 충격에 빠졌고, 벤치에 머무는 동안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로 더욱 힘든 날들을 보냈다. 오범석이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체력.

박성화 감독은 오범석에게 “내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만들어 오라”고 주문했다. 오범석은 그날부터 경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체력 끌어올리기에 매진했다. 어머니 이 씨는 “그 때가 범석이가 처음 맞은 시련이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아들이 좀 더 강해지기를 바라면서 지켜봤죠. 이후 범석이는 눈에 띄게 체력이 좋아졌고, 박성화 감독님 역시 범석이를 선발에 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시련을 이겨내라, 위기도 기회가 된다

2008년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FC 사마라로 진출한 오범석은 1년여 만에 러시아 생활을 접고 울산 현대로 돌아왔다. 당시 사마라는 선수단에게 임금을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 위기가 심각했고, 오범석 역시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이적이 불가피했다.

당시 아들의 힘든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는 마음을 다잡으며 위기가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범석이가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어요. 아픔을 겪고 나서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해줬죠. 결국 범석이는 울산 현대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아버지)

울산 현대 김호곤 감독은 “범석이가 두뇌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하며 오버래핑이 좋은 선수다. 울산 현대에 꼭 필요한 인재이고, 나아가 월드컵에서도 주축선수로 맹활약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주원이 아빠 오범석, 결혼 후 ‘짠돌이’

2009년 2살 연하의 여대생 민수지 씨와 결혼에 골인한 오범석은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빠다. 그런 그가 결혼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돈 씀씀이’다. 어머니 이 씨는 “범석이가 결혼 전에는 기분파였어요. 가끔 후배들을 불러 한 턱을 쏘기도 하고.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기분대로 돈 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버지 오 씨는 “예전에는 차를 살 때 남들처럼 디자인을 선호했는데 이 녀석이 요즘에는 차 연비를 따지더라고요. 가족들 태울 차라 그런지 안전성도 엄청 따진다”며 아버지 티가 나기 시작한 아들을 기특해 했다.


오범석 프로필


출생=1984년 7월29일 신체=180cm, 73kg 소속팀=울산 현대 축구단
포지션
=MF(미드필더) 출신학교=울산옥동초등학교-학성중학교-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데뷔= 2003년 포항 스틸러스 입단 A매치 출전 및 성적=37경기 출장 2골

A매치 데뷔=2005.1.16 vs 콜롬비아 (LA, 친선경기)

A매치 첫 골=2009.10.14 vs 세네갈 (서울, 친선경기)
선수 경력
=포항 스틸러스(2003∼2007)-요코하마FC(2007)-FC 크릴리아 소베토프 사마라(2008∼2009)-울산 현대(2009∼현재)

대표 경력=U-20 청소년대표(2003), 아시안게임대표(2006), 국가대표(2005∼현재)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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