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왔어요?”
호텔 방만 나가면 받는 질문이다.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남아공 사람들은 기자를 보면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고 하면 되돌아오는 반응도 똑같다. “한국 축구 정말 놀랍다. 한국은 승리할 자격이 충분하다.”
○ 기자에게 “박지성 대신 사인 좀”
사실 처음 남아공에 왔을 때만 해도 질문이 달랐다. 중국 또는 일본에서 왔느냐고 먼저 물었고 한국은 3순위였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나 한국이 먼저다. 현지인들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코리아, 넘버 원”을 외친다.
이 모든 게 태극전사들이 12일 포트엘리자베스에서 그리스를 2-0으로 꺾은 뒤 생긴 변화다. 경기가 끝난 뒤 며칠이 흘렀고, 포트엘리자베스가 아닌 대표팀 베이스캠프 장소 루스텐버그로 넘어왔음에도 ‘코리아 바이러스’는 여전히 남아공 전역에서 유효했다.
주유소 직원인 벤슨 음탕가 씨(23)는 기자를 보자 대뜸 사인을 요청했다. 이유를 묻자 “한국 경기를 본 뒤 박지성의 팬이 됐다. 그에게 사인을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한국에서 온 당신 사인이라도 대신 받아야겠다”는 게 그 대답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건 사와라 씨(37)는 아예 한국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본 경기 중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치 월급을 털어 유니폼을 샀다”며 활짝 웃었다.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한국은 화제다. 프레스센터, 각국 대표팀 훈련장 등에서 만난 기자들은 “한국이 원래 그렇게 잘했나”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의 비결이 뭐냐” 등 질문을 쏟아냈다.
○ 동양인만 보면 “코리아 코리아”
현지 교민들도 즐겁다. 한 교민은 “동양인만 보면 ‘코리아’를 연호하며 부부젤라(남아공 전통 나팔)를 불러대는 통에 귀가 좀 따갑긴 해도 남아공에 온 이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며 웃었다. 1차전 때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경기 초반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를 응원했다.
부부젤라 소리에 붉은 악마의 응원 소리가 묻혔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이 전반 초반 선제골을 뽑은 뒤 계속 멋진 플레이를 이어가자 이내 그라운드는 한국 응원 소리로 가득 찼다.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 환호와 부부젤라 소리가 하모니를 만드는 흐뭇한 모습까지 연출됐다.
―루스텐버그에서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