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박태환 파트너 이현승, 훈남외모에 공부까지

입력 2010-1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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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스포츠동아DB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잔소리 할 때 꼭 등장하는 ‘당신 친구의 아들’은 모든 것이 잘났다는 데서 유래한 말인데요. 이 선수를 보면 딱 그 말이 떠오릅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남자자유형의 2인자로 떠오른 이현승(24·사진) 얘기입니다.

이현승 앞에는 꼭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습니다. ‘박태환(21·단국대)의 훈련파트너’라는 것이죠. 박태환의 호주전지훈련마다 이현승은 동행했습니다. 인고의 물살을 함께 갈랐지요. 사실 훈련의 포커스가 박태환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수는 훈련파트너를 꺼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현승은 “저도 선진수영 접하고, 태환이 보면서도 배우잖아요”라며 웃어넘깁니다.

16일 광저우 아오티아쿠아틱센터였어요. 박태환의 남자자유형400m 시상식이 열리는 순간, 관중석의 이현승은 부러운 듯, 시상대를 바라봅니다. “저도 수영선수잖아요. 꼭 한 번은 저도 저렇게 하고 싶은데….”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많은 선수들이 그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가는 대회마다 1등이었거든요. 박태환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박태환의 어머니가 이현승의 어머니를 찾아가 ‘운동의 비결’을 묻곤 할 정도였답니다. 이현승은 박태환의 3년 선배거든요.

운동만 잘한 게 아니었습니다. 학업성적도 우수해서, 중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대원외고에 합격했을 정도입니다. 이 때 이현승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공부냐, 운동이냐.’ 부모님은 당연히 대원외고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이현승은 수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 그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가출까지 했다네요. 그의 아버지는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외고에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으면 좋겠다. 그 뒷바라지만은 꼭 약속한다”고요. 이현승(59)의 아버지는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고,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인 이병주 씨입니다. 당신께서 미국 유학시절 본대로,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워보고 싶었대요. 결국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주일이면 단 3일만 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었어요. 그것도 남들 야간 자율학습하는 시간에요. 대원외고 친구들은 “너 놀러가서 좋겠다”고 했답니다. ‘아, 남의 속도 모르고. 얼마나 힘든 운동인데….’ 수영장에 가면 질투의 시선으로 몸이 따가웠습니다.

“쟤는 공부도 잘 하는데 운동까지 잘하니까.” 여기에서도, 또 저기에서도 외로웠지만, 그래도 기록이 단축되는 쾌감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루 수면시간은 4∼5시간이었답니다. 아버지는 “그 때문에 키(175cm)가 많이 안 컸나보다”며 안쓰러워합니다.

결국 그는 미국에서도 수재들만이 모인다는 아이비리그의 콜럼비아대학에 합격합니다. 그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도 ‘수영’이래요. 콜럼비아대학이 수영부가 세다나요?

광저우에서도 그는 수강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휴학을 쓸 수가 없거든요. 군대에 다녀오느라 학교를 많이 쉬어야 했습니다. 제대한 지는 이제 겨우 3주가 됐어요. 다음 학기에는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제 금융관련 전공공부에도 힘을 쏟겠대요.

운동 계획이요? 벌써 세워뒀지요. 일단 NCAA(미국대학체육협회) 출전 기준기록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2012런던올림픽에 가고 싶답니다. 아버지는 “더 먼 미래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귀띔합니다. 멋지지 않나요? 한국 수영 국가대표 출신의 금융전문가.

미국에는 운동선수출신 정치·경제인도 많잖아요. 한국에서는 언제 그런 인물이 탄생할까요? 이현승에게서 그 답을 봅니다. 박태환을 한국수영의 선구자라고 하지만, 이현승 역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답니다. 많은 후배들은 그를 ‘롤 모델’로 삼아 ‘주경야독’을 하겠지요. 이제 그에게서 ‘박태환의 훈련파트너’라는 꼬리표를 떼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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