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21일 서울 역삼동 피트니스클럽에서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입단식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찬호가 오랜 등번호 ‘61’이 찍힌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한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16년간 각별한 우정…마침내 한솥밥
“日야구 경험 풍부한 후배 조언 듣겠다”
“이승엽이 있어서 오릭스로 결정했다.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日야구 경험 풍부한 후배 조언 듣겠다”
박찬호(37)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로 이승엽(34)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박찬호는 21일 ‘피트니스 박 61’에서 열린 오릭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어제 이승엽과 통화했는데, 이승엽이 축하한다면서 오늘 함께 자리를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캠프 시작하는 날부터 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2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이승엽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고, 오릭스로 결정하게 된 것도 영향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둘은 나이도 세 살 차이가 나는 데다, 그동안 뛰는 무대가 달랐다. 그러나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며 우정을 쌓아왔다.
이들의 운명을 얘기하자면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대 2학년이던 박찬호는 그해 1월 LA 다저스와 입단계약을 하며 메이저리그 무대로 진출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경북고 3학년 이승엽은 한양대에 진학하기로 하고 합숙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양대로 진학하려던 이승엽이 프로 진출로 선회하면서 동문의 인연을 맺지 못했다. 만약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가지 않고, 이승엽이 프로 진출을 포기했다면 박찬호는 4학년, 이승엽은 1학년으로 한양대에서 한솥밥을 먹을 뻔했다. 둘은 엄밀히 말해 한양대 졸업생은 아니지만 한양대는 훗날 한국야구의 투타 거물로 성장한 이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둘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함께 한 것은 2001년 장충리틀야구장에서 개최된 나이키 어린이야구교실. 박찬호는 투수를 지도하고, 이승엽은 타자를 지도하며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데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처음으로 같이 태극마크를 달고 4강 신화를 합작했다. 이승엽은 WBC 초대 홈런왕에 오르며 맹활약했고, 박찬호는 선발과 마무리로 마운드를 든든하게 지켰다.
2007년 이승엽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박찬호가 조화를 보내는 등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했다. 겨울에 한국에 왔을 때 서울에서 종종 만나 식사도 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박찬호는 “이승엽과 같이 할 수 있게 돼 굉장히 흥미롭고 큰 힘이 된다”면서 “이승엽이 일본에서 여러 해 뛰어 타자들에 대해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나가면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승엽이 재기할 수 있도록 나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1994년 한양대 첫 만남이 불발된 뒤 16년 만에 마침내 같은 팀에서 뛰게 된 ‘코리안특급’과 ‘국민타자’. 이들은 일본 적응과 부활을 목표로 오릭스에서 멋진 의기투합을 약속하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