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호 “서글프다, 날 키운 17년 빅리그를 떠나려니…”

입력 2010-12-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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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승을 거두며 노모를 넘어선 뒤 미련 없이 새 출발을 택한 박찬호. 17년간 그를 상징한 숫자는 ‘61’이었지만, 먼 훗날의 팬들은 ‘124’라는 숫자 속에서 ‘코리안특급’을 추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찬호(오른쪽)가 21일 오릭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무라야마 본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124승을 거두며 노모를 넘어선 뒤 미련 없이 새 출발을 택한 박찬호. 17년간 그를 상징한 숫자는 ‘61’이었지만, 먼 훗날의 팬들은 ‘124’라는 숫자 속에서 ‘코리안특급’을 추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찬호(오른쪽)가 21일 오릭스 입단 기자회견에서 무라야마 본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낯선 미국땅 내 최고 야구 인생
팬·동료들 생각하면 가슴 먹먹

124승 날 가장 의미있는 경기
미련 버리고 ‘제 2 야구’ 도전
박찬호(37)는 “서글프다”고 했다. 대부분의 야구인생을 보낸 메이저리그를 떠난다는 게 마냥 홀가분할 수는 없었다. 오릭스 입단 계약서에 사인을 한 순간, 1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외로운 미국생활을 버틸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한국교민들,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야구팬들,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 머릿속에 한 명, 한 명 떠올랐다. “17년 동안 낯선 미국 땅에서 잘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그 분들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미국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박찬호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 ‘야구’라는 공통점 하나로 버티기에는 삶의 여러 부분이 부딪쳤다. 그래도 “박찬호 선수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목소리에 늘 힘을 얻곤 했다.

그러나 매년 팀을 옮기는 ‘저니맨’ 생활은 그를 점차 지치게 했다.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로 효용가치를 평가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는 “명예를 지키려고 꾸준히 노력을 해왔지만 텅 비었다는 느낌만 들었다”며 “이제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 선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3년 전 마이너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내면서는 은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이 ‘동양인 최다승(124승)’이라는 목표였다. 고심 끝에 은퇴시기를 ‘124승 달성 후’로 잡았다.

그리고 10월 2일 마이애미 선라이프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전에서 5회 구원으로 등판해 3이닝 6탈삼진 무실점 투구로 승리하며 노모 히데오의 아시아 최다승(123승) 기록을 뛰어넘었다. “17년 메이저리그 생활 중 가장 의미 있는 경기를 마친” 후 그는 미국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 그 3이닝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를 안겨줬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야구생활을 좀더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었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일본행. 사실상 메이저리그 은퇴지만 과거의 아쉬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더 크다.



물론 이 세상에 ‘보장’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 좋은 성적을 내고 팀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쉼 없이 뛸 준비를 마쳤다. 37세, 늦은 나이에 시도하는 새로운 도전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지만 그는 늘 곁을 지켜준 가족을 위해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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