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호환 PC(Personal Computer)

입력 2011-05-16 14: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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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컴퓨터의 세계 표준


1951년, 세계 최초의 상용 컴퓨터인 ‘유니박(UNIVAC)-I’이 등장하면서 컴퓨터라는 기계가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의 컴퓨터는 가격이 집 한 채만큼이나 비쌌고, 크기 역시 트럭만 했기 때문에 누구나 구매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자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전반적인 기술력이 향상되었고, 가격 역시 승용차 한 대 정도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되었다.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컴퓨터라는 기계가 대중화될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70 ~ 1980년대 사이에 많은 기업이 다양한 종류의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켄백(Kenbak)의 ‘켄백-1’, 애플(Apple)의 ‘애플 II’, MITS의 ‘알테어(Altair) 8800’ 등이었다. 이러한 제품 중에는 애플 II와 같이 출시 첫해에만 수 천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제품도 있던 반면, 켄백-1과 같이 불과 수십 대를 판 후에 제조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았다. 예전보다 가격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컴퓨터는 여전히 고가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마음 높고 컴퓨터를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의 컴퓨터들은 제조사별로 독자적인 아키텍처(Architecture: 시스템 전반의 구조 및 설계방식)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서로 호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화, 그리고 대중화의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애플 II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긴 했지만 하나의 제조사에서 컴퓨터 시장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IBM, ‘PC(Personal Computer)’를 내놓다

그런데 1981년, 미국 IBM사에서 ‘IBM 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 5150’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른바 ‘IBM PC’라고 불린 이 제품은 성능 면에서는 평범했지만, 완전한 공개 형식의 아키텍처를 내세워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컴퓨터를 설계하는데 핵심인 하드웨어의 회로도 및 바이오스(BIOS: 데이터 입출력 방식을 정하는 기본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공개함으로써 원개발사인 IBM 외의 다른 제조사에서도 IBM PC와 호환되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그리고 주변기기를 자유롭게 생산해서 판매할 수 있었고, 심지어 개인이 직접 부품을 구해 컴퓨터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했다.


IBM PC는 세부 구성 면에서도 범용성이 높았다. 첫 번째 모델인 IBM PC 5150은 인텔의 8088 CPU(동작 클럭 4.77MHz) 및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갖춘 것이 하드웨어 상의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이 모두 IBM외의 다른 회사에서도 비교적 쉽게 조달할 수 있는 부품들이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으로 개발한 PC-DOS 운영체계를 기반으로 구동되었는데, PC-DOS는 IBM 제품 전용이었지만, 이와 완전히 호환되는 MS-DOS가 일반 소비자 및 호환 제조사들 대상으로 판매되었으므로 소프트웨어 면에서도 높은 호환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컴팩, 델, HP 등의 여러 제조사에서 IBM PC와 호환되는 컴퓨터를 대량으로 생산 / 판매했고,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PC/AT,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으로 자리 잡다

이후 IBM은 PC 5150의 후속 모델인 PC/XT(1983년), PC/AT(1984년)를 연달아 내놓으며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 특히 PC/AT는 내부적으로는 16비트, 외부적으로는 8비트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불완전한 16비트 CPU인 인텔 8088 대신, 완전한 16비트 처리를 할 수 있는 x86 계열 CPU인 인텔 80286(동작 클럭 6MHz, 일명 ‘286’)을 갖춰 전반적인 연산 성능을 크게 높였다. 그리고 플로피디스크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초기 용량 20MB)를 기본 탑재했다(참고로 PC/XT에도 하드디스크가 탑재되었지만 용량이 작고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상당수 PC/XT 호환 기종에는 하드디스크가 삭제되기도 했다).

또한, 16비트 대역폭(데이터를 전송하는 통로)을 갖춘 ISA(Industry Standard Architecture) 슬롯을 갖추고 있어서 각종 확장 카드를 장착해 성능을 높이는데도 유리했으며, 101 키 키보드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병렬 포트와 직렬 포트를 기본으로 갖추는 등 성능과 기능은 물론, 호환성이나 업그레이드 편의성 면에서도 PC/AT의 아키텍처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장점은 IBM의 PC/AT의 수많은 호환 기종에도 그대로 이어져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대다수를 IBM PC/AT 및 PC/AT의 호환 기종들이 점유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IBM이 새로운 PC 시리즈를 내놓을 때마다 큰 인기를 얻고, 뒤이어 다수의 제조사에서 이와 호환되는 제품을 대량으로 출시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게 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뜻을 가진 ‘PC(Personal Computer)’라는 단어가 곧 ‘IBM PC 및 호환 PC’를 지칭하는 것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했다.


‘IBM 호환 PC’에 압도당한 ‘IBM PC’

하지만 이 때를 즈음해 IBM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IBM에서 직접 제조하는 PC에 비해 타 제조사의 IBM 호환 PC가 훨씬 많이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컴퓨터 제조사들이 단순히 IBM PC를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IBM PC를 능가하는 성능과 기능을 가진 IBM 호환 PC를 내놓는 경우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 컴팩에서 인텔의 신형 32비트 CPU인 ‘80386(일명 386)’을 탑재한 PC/AT 아키텍쳐 기반 PC를 IBM보다 먼저 출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IBM PC’가 ‘IBM 호환 PC’에게 압도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 IBM은 1987년, 기존의 PC/AT의 후속 모델인 ‘IBM PS/2(Personal System/2)’를 출시했다. IBM PS/2는 80386 CPU를 탑재했으며 고화질 그래픽을 출력할 수 있는 VGA(Video Graphics Array) 출력 장치를 다는 등 성능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었다. 운영체제 역시 문자 기반의 운영체제인 PC-DOS 외에도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인 ‘OS/2’를 탑재하여 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다.


그 외에 PC/AT까지 사용하던 ISA가 아닌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기능 확장 슬롯을 도입했고, 플로피디스크의 규격 역시 5.25인치 대신 3.5인치로 바꿨다. 키보드와 마우스의 접속 규격 역시 직렬 포트가 아닌 PS/2 포트로 변경하는 등 상당히 많은 점이 새로워졌다. 그런데 이러한 변경사항 때문에 PS/2는 시장에 이미 표준 규격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 PC/AT 아키텍처 기반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와 호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이미 시장에는 IBM PS/2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성능은 뒤지지 않고, 여기에 호환성까지 더 우수한 여러 제조사의 PC/AT 호환 PC들이 많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굳이 IBM PS/2를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PC 제조사들은 IBM이 제시하는 표준 모델을 따르기보다는,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제공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PC/AT 호환 PC의 발전형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이익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IBM PS/2는 결국 대중화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PS/2와 함께 보급을 추진하던 OS/2 운영체제 역시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IBM의 PC 사업은 한동안 침체의 길을 걸어야 했고. 1994년부터는 PC/AT 아키텍처에 기반한 PC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PC 시장은 주도권은 CPU와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가게 되었다. 다만, PS/2 규격의 키보드와 마우스 포트만은 지금도 쓰이고 있어 IBM PS/2의 흔적을 느끼게 할 뿐이다.


‘PC’의 개념을 정착시키다

2011년 현재도 흔히 쓰이는 PC, 즉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은 대부분이 IBM 호환 PC, 정확히는 PC/AT 아키텍처에 기반을 둔 컴퓨터다. 물론, 성능은 1984년의 IBM PC/AT와 비교가 되지 많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인텔 x86 기술 기반의 CPU 및 다양한 기능 확장 장치,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 외의 개인용 컴퓨터라면 애플에서 독점 공급하고 있는 매킨토시 시리즈를 들 수 있지만 세계 개인용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한자리 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PC’를 지칭할 때 IBM 호환 PC 외의 제품은 연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말 그대로 IBM 호환 PC는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규격이라는 뜻이다.

다만, 정작 ‘PC’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IBM은 현재 PC 시장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2004년, IBM은 PC 사업부문(데스크탑-씽크센터, 노트북-씽크패드 등)을 중국의 레노버(Lenovo)에 매각하여 PC 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났기 때문이다. IBM의 개방형 플랫폼 전략은 분명 대단한 결과를 낳았지만, 그것이 과연 완전한 성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IBM은 분명 전 세계 컴퓨터 시장, 나아가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며, ‘PC’가 존재하는 한 그 이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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