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은 예정된 10시를 조금 지나 말끔한 정복을 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조인성은 예정된 10시를 조금 지나 말끔한 정복을 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08:00 - "여기…맞나요?"

주차장 구석. '공군병장 조인성,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되길'이란 문구와 함께 포토월이 놓여 있었다. 단상도 없었다. 미리 온 50여 명의 취재진이 없었다면 지나칠 뻔했다. 행사장은 단출했다.

배우 조인성의 전역식은 4일 경기도 평택 오산 공군작전사령본부 '후문 주차장'에서 열렸다.

팬들도 하나 둘 모였다. 손등에 '조인성 판박이 스티커'를 붙인 한 일본 팬 무리가 눈길을 끌었다.

2년 전 입대할 때도 경남 진주를 찾았다는 가와구치 메구미 씨는 "조인성 제대인데 행사를 너무 좁은 곳에서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내 "그래도 키가 커서 잘 보일 것"이라며 "오늘은 특별히 화장도 신경 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00여 명의 팬들이 버스로 오고 있다"는 귀띔도 해줬다.


▶08:30 - "이쪽입니다"

정문과 후문으로 나눠지는 갈림길에 검정 정장을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났다. 안내를 위해 나온 조인성의 소속사 측 직원이었다. '행사장'이란 표지판을 옆에 두고 도로 한 복판에 놓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군인들도 곳곳에 배치됐다. 안전과 원활한 진행을 위해 포토월 앞에 모여 있는 팬들과 기자들을 다시 정렬시켰다. 또 자체적으로 공지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조인성 병장에 대한 코멘트에는 일절 응하지 마시고…."

그 사이 전세 버스가 등장했다. 하늘색 풍선을 든 여인들이 들뜬 얼굴로 내렸다. 팬 중에는 태국이나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온 해외 팬들도 있었다. 조인성 얼굴이 박힌 부채와 핑크색 장식이 달린 큰 머리띠 등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09:00 - "무한도전 아니야?"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MBC '무한도전' 제작진들이 현수막과 조정 연습 기구를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커다란 붉은색 헬륨 풍선에 '축 제대 조인성, 미사리에서 생긴 일'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달기 시작했다.

장기 프로젝트로 조정 편을 준비 중인 '무한도전'은 지난 방송에서 조인성, 소지섭, 원빈 등의 미남 배우들을 부족한 조정 멤버 후보로 올리기도 했다.

깜짝 놀란 기자들이 다가가 제작진에게 출연여부를 물었다. "조인성 섭외를 위한 깜짝 이벤트"라며 "결정된 것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인성의 소속사 역시 "섭외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전역식에 온다는 말도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궁금증은 여전했다.
국내외 200여 명의 조인성 팬들이 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오산 공군작전사령부 앞에 모여 조인성을 환영했다. MBC ‘무한도전’ 제작진들도 제대 축하 플래카드와 대형 풍선을 띄웠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국내외 200여 명의 조인성 팬들이 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오산 공군작전사령부 앞에 모여 조인성을 환영했다. MBC ‘무한도전’ 제작진들도 제대 축하 플래카드와 대형 풍선을 띄웠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09:30 - 식지 않은 인기 "인성 씨 사.랑.해.요."

팬 200여 명, 취재진 100여 명. 협소한 공간이 북적였다. 소령과 중령으로 보이는 이들도 나타났다. '조인성의 퇴장 동선'을 두고 군 관계자와 소속사가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취재진에 밀려 라인 뒤로 물러난 팬들도 귀를 쫑긋했다.

"지금 군악대 후임들이 조인성 병장을 보내기 아쉬워해 간단한 다과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10시 정각에 나올 예정입니다.…안전에 조심을 해주시고, 특히 바리케이드와 화분에는 올라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공지가 끝나자 행사장엔 다시 "조인성 사.랑.해.요~"가 울려 퍼졌다. 해외 팬들의 목소리였다. 힐끔 돌아보니, 안경을 낀 한 대만 아주머니는 벌써 세 번째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10:05 - 팬이야? 기자야? '매의 눈'을 가진 여인들

"왔다, 왔다."

검은색 외제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과 취재진 모두 술렁였다. 일부 팬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포토월을 그냥 지나쳤다. 단순이동 차량이었다. 금세 다시 조용해졌다.

그 사이 작은 체구의 한 일본 아주머니가 취재진 쪽으로 라인을 넘어 왔다. 겹겹이 모여 있는 기자들 뒤로, 소형 캠코더를 설치한 삼각대를 머리 높이 들었다. 그래도 여의치 않았던지 뒤에서 지켜보던 일행에게 손짓했다. 그 중 한 명이 2단 사다리를 건넸다.

이미 취재진 사이에는 커다란 렌즈가 장착한 카메라를 든 팬 몇몇이 포진해있었다.
조인성은 전역식에 왼손 중지에 반지를 착용하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이에 조인성의 소속사 측은 “근무한 부대에서 전역할 때 주는 기념 반지”라고 답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조인성은 전역식에 왼손 중지에 반지를 착용하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이에 조인성의 소속사 측은 “근무한 부대에서 전역할 때 주는 기념 반지”라고 답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10:09 - 그가 왔다.

초를 다투며 플래시가 터졌다.

조인성이었다.

군악대가 정렬을 마치자, 버스에서 그가 내렸다. 기쁜 표정인지, 섭섭한 얼굴인지 모를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말끔한 정복으로 포토월에 선 늠름한 모습을 보자 25개월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조인성의 첫 마디였다.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제대하는 날도 아닌데 화려하게 합니다."라고 겸손을 보였다. "아직도 얼얼하다"며 "어제 한 숨도 못 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여전한 입담을 과시했다. "걸 그룹보다 무한도전을 더 많이 봤다", "김수미 선생님이 나오면 일어서서 말씀을 듣느라 후임들도 다 일어난다" 등의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냈다. "조인성에게 군대란?"이란 질문에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좋겠다"는 재치 있는 답을 했다.

또한, '현빈'이란 이름을 가진 후임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해병대에 입대한 현빈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무슨 말을 해도 위안이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약 10분 쯤 지나 소속사 관계자가 마무리를 시도했지만 조인성은 손짓으로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 뒤로 서너 질문에 더 답하며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마쳤다.
행사장에서 차량까지 약 50m를 걷기로 한 조인성을 일부 취재진과 팬들이 막아 혼란을 빚었다. 그 와중에도 조인성은 팬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행사장에서 차량까지 약 50m를 걷기로 한 조인성을 일부 취재진과 팬들이 막아 혼란을 빚었다. 그 와중에도 조인성은 팬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국경원 기자 (트위터 @k1isonecut) onecut@donga.com



▶10:23 - 50m에 5분 걸려

조인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목걸이를 하고, 3단 케이크를 들었지만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팬들에 대한 인사 차원에서 약 50m 걸어가기로 했으나 일부 취재진과 팬들이 막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것.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뒤에서 조인성을 기다리던 팬들은 한목소리로 "비키세요"라고 외쳤고, 사다리에 올라 그를 찍던 한 동영상 기자는 움직이는 인파에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매니저가 이동 중 사람들을 밀어내자 조인성이 오히려 이를 제지했다.

차를 타기까지 조인성의 50m 도보는 5분 넘게 소요됐다. 종전의 검정 아우디를 타고 떠났다. "게이트를 나가야 정말 제대하는 것"이라고 말한 조인성은 5월 4일 10시 28분,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돌아왔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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