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클럽 5만7000명 1만원 소액기부 ‘나의 우상’ 먹일 도시락-밥차 준비

입력 2011-11-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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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음반을 내면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린다. 배우가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면 현장 스태프를 격려하기 위해 도시락과 음료수를 보낸다. 스타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해야 할 이 일들을 요즘은 팬클럽 회원들도 한다. H.O.T가 대세이던 시절 ‘오빠부대’를 경험했던 10대들은 자라서도 왕성한 팬덤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팬레터를 보내는 게 고작이던 팬들의 애정 표현 방식도 이제는 100만 원짜리 도시락을 돌리고 ‘조공’ ‘진상내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체계적이다. 스스로를 ‘서포터’로 부르는 팬클럽들의 스타 뒷바라지 실태를 ‘일우스토리’를 통해 들여다봤다.》
‘일우스토리’는 배우 정일우의 팬클럽이다. 회원은 초등학생부터 30대 회사원까지 5만7000명을 넘는다. 최근 일우스토리 카페에는 다음과 같은 정산 명세가 빼곡히 올라왔다. ‘쌀화환 173만 원’ ‘전단 인쇄 5만8300원’ ‘얼음조각 40만 원’…. tvN의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로 복귀한 정일우의 뒷바라지를 위해 일우스토리가 지출한 내용이다.

○ “우리 스타 홍보는 우리가 한다”

팬들이 ‘서포트(뒷받침·후원)’라고 부르는 스타 뒷바라지는 드라마 홍보 활동으로 시작된다. ‘꽃미남 라면가게’ 제작발표회를 전후해 일우스토리는 지난달 22일과 30일 서울 중구 명동과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이 드라마를 홍보하는 ‘스핀 광고’를 했다. 정일우의 사진과 드라마 제목이 들어간 커다란 광고판을 만들어 묘기하듯 360도로 돌리며 시선을 끄는 방식이다. 한국을 찾는 해외 팬들을 위해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 광고판도 준비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의 홍보 활동도 중요하다. 일우스토리 회원 9명은 정일우의 사진과 드라마 방송 일정이 들어간 한 장짜리 컬러 홍보 전단 4000장을 제작해 행사 당일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위해 회원 중 일부는 직장에 휴가를 냈다.

다른 스타들 팬클럽의 서포트도 다르지 않다. 가수 김현중이 첫 솔로앨범을 내자 팬클럽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조를 짜서 언론사를 돌며 직접 제작한 보도자료와 미리 자비로 사놓은 음반을 제공했다. 재정 사정이 좋은 일부 팬클럽은 가수의 이름이나 캐릭터가 들어간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를 홍보용으로 나눠주기도 한다.

○ 제작발표회 화환 수는 스타의 자존심

제작발표회장의 규모는 스타의 인기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꽃미남 라면가게’의 제작발표회장은 ‘시청률 쫄깃하게, 꽃라면 인기 보골보골’ ‘꽃미남 정일우의 꽃라면, 루마니아에서도 응원합니다’ 같은 문구를 적어 넣은 쌀화환들이 장식했다. 일우스토리가 제공한 화환들이다.

행사장 안에는 정일우의 상반신 사진이 담긴 얼음조각상도 들여놓았다. 쌀화환에 적힌 문구를 읽던 정일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데뷔 때부터 살뜰히 챙겨주고 연기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 줘서 팬들이 이제는 친구나 가족, 선생님 같아요”라며 그는 고마워했다.

드라마 제작이 시작되면 스타와 제작진이 먹을 도시락이나 ‘밥차’를 준비한다. 빡빡한 일정에서 끼니를 거르는 스타의 건강을 챙기는 것도 팬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우스토리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20일까지 도시락 제작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3000∼1만 원의 소액 기부가 대부분이다. 일우스토리 운영진은 “도시락을 보내는 날엔 운영진이 한집에 모여 음료수 하나하나에 스티커를 붙이고 간식을 포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 해외 지부도 잇따라 생겨나

정일우가 출연한 드라마들이 해외에 수출되면서 해외 팬클럽들도 생겨났다. 일본의 팬클럽은 ‘일우스토리 저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해외 팬클럽도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아 일우스토리에 전달한다. 이번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는 일본 중국 태국 루마니아 등의 팬클럽이 기금을 보내와 쌀화환을 전시했다.

정일우에게 전달해 달라며 일우스토리의 운영진에게 선물을 보내오는 해외 팬들도 있다. 일본 팬들은 정일우의 사진이나 이름이 새겨진 초콜릿처럼 아기자기한 간식을, 중국 팬들은 정일우 관련 자료를 정리한 두꺼운 책이나 홍삼 세트 등 통 큰 선물을 보내는 일이 많다.

일우스토리처럼 팬클럽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 형성된 팬덤 문화가 20년 넘게 흐르면서 이제 주류 문화로 자리를 잡은 데다 학교 문화와 직장 문화를 구분하던 장벽이 사라져 중고교 시절 즐기던 하위문화를 성인이 되어서도 누릴 수 있게 된 점 등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엔 스타를 말 그대로 ‘아이돌(우상)’로 여겼지만 지금은 친근하고 가까운,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팬들이 스스로를 ‘서포터스’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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