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2년. 그 해 신인이던 박계원 롯데 코치(왼쪽)는 유격수로 맹활약하며 골든글러브의 영예까지
차지했다. 구도 부산의 적통인 박 코치는 “고향팀에서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DB
데뷔 첫해 PS 맹타…롯데 V 일등공신
류중일 제치고 유격수 골든글러브 영예
“그때는 숨은 장타 펑펑…팬사랑도 듬뿍
고향팀 코치로 다시 KS 우승하고 싶다”
지난달 1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부산고-경남고의 라이벌매치. ‘구도(球都)’ 부산을 대표하는 두 명문고간 우정의 맞대결에서 가장 빛난 이는 롯데 박계원(41) 코치였다. 박 코치는 7-9로 뒤진 9회말 무사 만루에서 끝내기 3타점 2루타를 때려 부산고의 10-9,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고 그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을 잠시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박 코치는 5일 “현역 때 두세 번 끝내기 안타를 친 경험이 있지만, 이번 (라이벌매치) 끝내기 안타는 정말 극적이었던 것 같다”면서 “하루 전 동문회에 다녀왔는데 오랜만에 인기 스타 대접을 받았다. 사인해달라는 분도 많았다”며 웃었다. 부산 토박이로 고향 팀 롯데에 몸담고 있는 박 코치를 ‘코치, 그들을 말한다’ 여섯번째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화려하게 시작한 프로 생활
대연초∼부산중∼부산고∼고려대를 거치며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던 박계원은 1992년 2차 2번 지명을 받아 롯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유격수로는 제법 큰 키(183cm)를 자랑하는 그는 프로 첫해 121경기에 나서 타율 0.243에 6홈런 47타점을 기록했다. 하위타선에서 요긴한 때 한방을 터뜨리는 소금 같은 역할을 했고 무엇보다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해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에서 솔로홈런을 때리는 등 2게임에서 타율 0.429에 1홈런을 기록한 뒤 해태와 만난 PO 1차전에서는 연장전 10회초 상대 투수 조계현(현 LG 수석코치)에게 결승타를 때리기도 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도 17타수 5안타, 타율 0.294를 기록하며 맹위를 떨쳤다. 박 코치는 “내가 생각해도 그 때는 잘 했던 것 같다. 숨어있던 장타가 많이 나왔다”고 옛 기억을 되살렸다. 당시 같은 신인이었던 염종석(현 롯데 투수코치)과 함께 팬레터를 많이 받는 선수로 꼽힐 정도로 팬들의 많은 사랑도 받았다. 프로 첫해 발군의 활약은 결국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신인으로서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것은 1983년 김재박, 1987년 류중일에 이어 세 번째였다. 박 코치는 “류중일 감독님이 딱 1년 못한 해가 있었는데 바로 그 해였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는 당시 넓은 수비 범위와 안정된 송구를 자랑하며 한동안 마땅한 주인이 없었던 롯데 유격수 자리를 든든히 지켜냈다.
○어깨 수술, 그리고 이적 또 이적
이듬해까지 주전으로 유격수 자리를 지키며 잘 풀리던 그의 프로 인생은 1994년 어깨에 탈이 나며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방위 근무를 하며 홈경기에 출전할 수가 있었는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게임을 뛰다가 고장이 난 것이었다. 결국 1995년 수술대에 올랐고, 1997년에야 현장에 복귀했지만 한번 꺾인 흐름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1998년 시즌 중반 쌍방울로 트레이드됐고, 이듬해에 해태, 2000년에 SK로 둥지를 옮기는 등 이적의 연속이었다. 단 3게임에 출전한 2002년을 끝으로 SK 유니폼을 입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연이은 트레이드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였고, 그는 이를 다양한 야구를 접할 수 있는 또다른 계기로 삼았다.
○눈을 뜨게 한 미국 연수
현역 말미부터 ‘코치 수업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것은 2003년 미국 연수였다. 플로리다 브래든턴의 피츠버그 루키팀에서 지도자로서 ‘배움’을 시작했다. 햄버거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패턴의 수비 연습 방법을 체득했고, 이는 선수들이 수비 연습 때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연결됐다. 그 때 함께 팀에 속해 있던 선수가 최근 2년 연속 메이저리그 홈런왕을 차지한 호세 바티스타(토론토)다. 1년 동안 배고픔을 참아가며 초보 지도자로 공부했던 그는 2004년부터 2년간 SK 2군에서 수비와 작전·주루를 주로 맡으며 후배들을 가르치다가 2006년 친정 롯데로 복귀했다.
○코치로서 우승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전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달리 코치들의 재량권을 대폭 인정했고, 이는 박 코치 같은 팀내 젊은 코치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올해 3루 작전코치를 맡았던 그는 “개인적으로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내야 땅볼 때 3루 주자 득점 확률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등 코치로서도 자신감이 많이 붙은 한해였다”고 올시즌을 돌아본 뒤 “지난해까지 롯데는 상대팀에서 만만하게 보는 팀이었지만,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년에는 더욱 좋아질 것이다”고 확신했다. 그는 화려하게 현역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그런 탓인지 “코치 생활은 반대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향 팀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코치생활을 하고 싶다. 딱 한가지 꿈을 꼽으라면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 코치는 롯데의 마지막 영광인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중 한 명이다. 신인이던 바로 그 해 이후 그는 단 한번도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박 코치는 내년 시즌 다시 수비분야를 맡아 1군 선수들을 지도한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