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두 체급 올렸다… 모든 걸 바꿨다… 마침내 불가능의 벽을 넘어섰다

입력 2012-08-0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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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늦깎이 출전 유도 金 송대남 성공기
“예전엔 ‘물 찬 제비’처럼 호리호리했죠. 지금은 완전 헐크예요, 헐크!”

남자 유도 대표팀 정훈 감독은 그를 두고 독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15년 전 66kg에 불과했던 몸무게를 지금 91kg까지 늘렸으니. 사실 일반인의 몸무게가 이렇게 늘어나면 자기 관리 못했다고 손가락질 받기 딱 좋다. 그런데 그는 반대다. 생존을 위해 늘렸고, 그 덕분에 치열한 정글에서 살아남아 33세의 나이에 최고의 무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일 남자 유도 90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송대남(남양주시청)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73kg급으로 시작해 81kg급, 다시 90kg급으로 변신한 송대남.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그의 생존 비결은 뭘까.


○ 체중 늘렸지만 도복 잡기도 힘들어

송대남이 체급을 90kg으로 바꾼 시기는 지난해 3월. 81kg급으로 옮길 때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러웠단다. 체육과학연구원 김영수 책임연구원은 “나이가 들면 근력을 키우기 어렵다. 게다가 송대남은 ‘종합병동’으로 불릴 만큼 잦은 부상으로 몸이 망가져 있는 상태라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통이 따랐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상으로 인한 훈련 부족으로 몸무게가 3kg가량 늘어난 상태였고 81kg급에는 강력한 라이벌 김재범(27·한국마사회)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체급 올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단 먹었다. 하루 5끼 먹으며 성인 남성 하루 칼로리의 8배 넘게 섭취했다. 쇠고기, 삼계탕, 달걀 등 고단백 위주로 식단을 짰다. 탄수화물도 빼놓지 않았다. 단백질 흡수를 빠르게 하려면 탄수화물도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게 트레이너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힘을 쓰는’ 체중을 늘려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하루 평균 3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도 근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피나는 운동으로 힘을 붙이면 다시 체중이 2∼3kg 빠졌다. 먹고 빼기를 반복하다 보니 흡사 고무 옷을 입은 느낌. 그래도 그렇게 석 달을 반복했더니 서서히 힘이 붙기 시작했다.

몸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자신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경기에 나섰더니 상대 도복조차 잡기 힘들었다. 상대는 보통 그보다 5cm 이상 컸고 팔다리도 길었다. 게다가 90kg급에는 유독 신체 조건과 힘이 좋은 선수들이 득실댄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점. 무게중심도 달랐기에 기술을 거는 타이밍조차 잡기 어려웠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주변 사람들에겐 이런 말을 했다. “괜히 체중을 늘려 양복 맞추느라 돈만 들었다.”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론 울었다.


○ 교본에 나올 법한 업어치기, 더 빠르고 정교하게

20대 송대남은 포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30대 송대남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결혼한 아내, 그리고 아내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도복을 벗을 수 없었다. 아내는 정 감독의 막내 처제였다. 누구보다 성실한 그를 눈여겨본 정 감독이 소개해 줬다. 항상 그를 아끼던 감독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마음을 다잡은 그는 전략부터 새로 짰다. 작은 키와 부족한 근력을 스피드로 보완했다. 상대보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였더니 반응이 왔다. 박선우(대구시체육회·90kg급→100kg급으로 체급 올림)는 “현대 유도는 손이 아닌 발로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스텝이 중요하다. 체급을 올려도 몸에 밴 스피드는 남아 있어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피드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상대하려면 그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일단 쉴 새 없이 ‘반복 대련’을 했다. 30∼40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상대를 바꿔 가며 대련해 다양한 상대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73kg급에서 81kg급으로 이동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김재범은 변칙 기술에 능한 스타일. 그래서 체급 이동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하지만 송대남의 기술은 교본에 나올 법할 만큼 우직했다. 한 유도 관계자는 “송대남은 ‘미스터 클린’으로 불릴 만큼 기술이 깨끗하다. 반대로 말하면 지나치게 정직하다는 얘긴데 이럴 경우 키가 크고 힘 좋은 상대를 만나면 고전하기 쉽다”고 평가했다.

송대남은 고심했다. 그렇다고 장점을 버리기도 힘든 터. 결국 장점을 극대화하기로 결심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인 뒤 장기인 업어치기로 승부를 봤다. 낮게 웅크려 상대방의 중심을 무너뜨리는 업어치기는 신체 조건이 뒤처지는 선수에게 유리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송대남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다듬었다. ‘알고도 못 막는’ 기술로 승화시켰다.

송대남은 국제대회에서 연전연승하며 국제유도연맹(IJF) 랭킹 포인트를 쌓았고, 결국 5월 대표 선발전에서 간판 이규원을 꺾고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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