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현의 가을 다이어리] ‘피콜로’ 박정배, 가을무대서 부활을 준비합니다

입력 2012-10-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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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스호츠동아DB

저에게는 두 명의 특별한 응원군이 있습니다. 네 살배기 딸 가율이와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어준 SK 이만수 감독님입니다.

첫째 딸 가율이는 요즘, 흔히 말하는 ‘미운 네 살’의 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자기 의사가 확실해지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아졌거든요. 그래도 엄격한 엄마와 달리, 자신의 이야기는 뭐든지 들어주는 아빠를 참 좋아하고 잘 따릅니다. TV 중계화면에 제가 등판한 모습을 보면 고사리 같은 손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열띤 응원을 펼친다고 하네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힘이 불쑥불쑥 납니다.

제가 지난해 두산에서 방출된 뒤 올해 SK에서 새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올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두산전에 어떤 마음으로 던졌냐?’였습니다. 솔직히 원망은 없었습니다. 두산 시절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건 저였으니까요. 물론 방출 후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한 아내와 생떼 같은 두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습니다. 더 이상 과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저에게 기회를 준 SK와 이만수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피하지 말고 씩씩하게 던져라!” 이 감독님은 저에게 기회를 주셨을 뿐 아니라 늘 힘을 북돋워주셨습니다. 물론 혼도 많이 났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거쳐 배운 게 참 많습니다. 가장 큰 가르침은 ‘욕심을 내지 말고, 잘 던지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나답게 던지자’입니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게 된 지금도 그 마음뿐입니다.

SK 동료들이 저에게 지어준 별명이 있습니다. ‘드래곤볼’이라는 유명 만화에 나왔던 ‘피콜로’입니다. (윤)희상이가 지어준 별명이 어느새 팀 전체로 퍼져 손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도 피콜로는 무한 재생되는 몸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제가 걸어온 길이 평탄했다고는 할 순 없지만 전 피콜로처럼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은인인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뛸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 첫 번째 포스트시즌은 최고의 축제, 아닐까요.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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