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김응룡 “70대 노인? 유니폼만 입으면 젊은 오빠”

입력 2012-12-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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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들에게 유니폼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화 신임 사령탑에 취임한 김응룡 감독(오른쪽 큰 사진)에게도 마찬가지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다시 현장에 선 그가 내년 시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삼성,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팀, 해태(왼쪽 사진 위부터)에선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다.스포츠동아DB

김응룡 통해 본 유니폼의 의미

한화 감독으로 돌아온 프로야구 명장
“야구판 떠난 8년 뒷방 늙은이로 전락”
V10 명성 흠집 시선 불구 의욕 불끈
야구인들 “유니폼 벗으면 죽은 목숨”


2012년 야구계 최대의 화제는 제10구단과 700만 관중, 그리고 김응룡 감독의 컴백이었다. 야구팬들에게는 새로운 구단과 관련된 소식이 궁금했겠지만, 야구인들에게는 김 감독의 한화행이 더욱 쇼킹한 뉴스였다. 2013시즌을 앞두고 벌써부터 심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연세도 있고 해서 이제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유니폼을 입으면…”이라며 전의를 불태우는 심판도 있다.


○2004년 김응룡이 야구계에 준 두 가지 충격

2004년 11월 제자 선동열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삼성 사장으로 취임한 김응룡 감독은 야구계에 두 가지 충격을 줬다. 첫째는 감독직을 물려준 것이다. 어느 누구도 2인자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적이 없었다. 둘째는 야구단의 최정점 사장이 됐다는 것이다. 현장 야구인 출신 최초였다.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모든 야구인이 부러워했다. 타고난 복장(福將)이라고 했다.

그런 김응룡이 2012년 10월 사장 대신 감독을 택했다. 유니폼을 벗고 지낸 8년을 물어보자 그다운 한마디를 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올해 초 스포츠동아 취재진이 경기도 용인의 자택을 방문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손자들을 돌보며 취재진을 다정하게 맞아주던 그는 자신을 “뒷방 늙은이”라고 했다.


○‘한화 감독 김응룡’을 향한 두 갈래 시선

김응룡 감독의 컴백과 관련해 두 갈래 시선이 있다.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다. 먼저 부정적 시선. 나이, 8년의 공백기와 관련이 있다. 너무 오래 현장을 떠나있었다. 선수들에 대한 정보부족을 걱정한다. 선수들과의 나이차에서 오는 괴리감도 있다. 요즘 선수와 예전 선수의 차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해태 시절처럼 선후배 위계질서로, 또는 감독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따라오게 만들기에는 요즘 선수들이 너무 계산적이다. 팀에 대한 희생심도 적다. 마음에 들지 않은 선수를 2군에 두고, 베테랑은 가차 없이 유니폼을 벗기던 예전의 방식을 쓰기도 어렵다.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비롯해 환경적 변화도 있다. 올해 몇몇 구단의 FA들은 사실상 태업을 했다. 그런데도 감독이나 구단이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았다. 전력의 큰 부분인 외국인선수도 마찬가지. 게다가 한화의 전력도 바닥이다. 몇 년간 리빌딩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나 다 안다. 설상가상 한화 프런트의 능력도 팀 전력과 비슷하다. 야구를 너무 모른다. 이 때문에 그동안 쌓아올린 김 감독의 명성에 흠집이 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긍정적 시선은 이렇다. ‘그래도 김응룡’이라는 것. 해태, 삼성을 거치며 팀의 전력이 좋았든, 나빴든 10회 우승은 운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자신은 선수 복이 많았다고 하지만, 선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최대한 능력을 이끌어내는 노하우는 분명 있다.

사실 감독은 육체적 힘이 중요한 자리가 아니다. 올바른 판단력과 더불어 선택의 상황에서 가장 승산 높은 묘수를 찾는 냉철한 두뇌가 더 필요하다. 감독은 선수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코치가 아니다.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우승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이끄는 인간 경영자다. 그런 면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감독의 경륜은 요즘 젊은 감독들이 감히 따라오기 힘들다. 나이가 주는 지혜도 있다. 김 감독의 마인드도 젊다. “감독은 다 같은 감독”이라며 ‘계급장을 떼고 붙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장성호의 트레이드에서 보여줬듯 하나의 수로 여러 가지를 노리는 그 감각은 여전한 듯하다. 그래서 성공을 믿는 사람도 많다.


○야구인에게 유니폼은 어떤 의미?

월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는 “야구의 약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야구인들은 유니폼을 입고 싶어 한다. 선수생활 말년 구단과 은퇴를 놓고 감정다툼을 벌이는 사례가 숱하게 많았던 이유다.

1993년 삼성-해태의 한국시리즈 3차전 때 전설의 15이닝 완투를 했던 삼성 잠수함 투수 박충식. 야구를 그만두고 호주에서 다른 삶을 찾았다. 지금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으로 야구계와 다시 인연을 이었다. 야구인에게 유니폼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야구선수는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유니폼을 벗을 때, 한 번은 진짜 자신이 죽을 때다.”

통산 100승을 넘긴 SK 김상진 투수코치. “야구를 떠나서 다른 일을 하면 꼭 다른 사람의 밥그릇에서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밥이 아닌 그런 느낌. 내가 살던 경계에서 나만 따로 떨어져 나와 따로 뒤쳐진 느낌. 가 봐야 사실 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꼭 그곳을 기웃거리는 이유다.”

LG의 영구결번 투수 김용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입었던 유니폼을 2005년 잠시 벗었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7∼8시였다. 10시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하면 야구 관련 뉴스부터 봤다. 그 순간이 가장 슬펐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있어야 하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냐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났다.”

주니치 시절 호시노 감독은 “유니폼은 전투복”이라고 했다. 야구인에게 그라운드는 전장이다. 김응룡 감독은 그 전쟁터에 자원해서 들어왔다. 진짜 노병의 컴백이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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