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신영철 “김성근 감독과의 충돌…목표는 같았다”

입력 2013-02-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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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전 SK 사장은 “내 경험이 체육계를 위해 도움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외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프로스포츠단의 수장으로서 무려 8년을 재직했다는 자체가 신 전 사장의 비범함을 증명한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사진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신영철 전 SK 와이번스 사장은 “나는 이제 (백수라서) 명함이 없는데”라며 웃었다. 신 전 사장은 6일 그룹에서 퇴임을 통보받은 뒤 곧장 e메일로 모든 구단 직원에게 ‘빚을 지고 간다. 행복했다’는 고별인사를 전했다. 이임식 후 일본 홋카이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일본에서 귀국한 다음날 신 전 사장을 만났다. 험하다는 야구판에서 구단 수장으로서 8년을 살아남았다. 그 시간 동안,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포테인먼트 성공도 좋은 성적 덕분
김 감독에 고마워…방향이 달랐을 뿐

잘한 일? KBO 총재 민선 시대 연 것
비즈니스 조직화에 야구 흥행 달렸다



○한국프로야구는 지금 위기다!

신 전 사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8년 동안 이 팀에 있었는데, 올해가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한다. 야구계 전체가 어수선하고, 우리도 안주하고 있다. 이렇게 느슨할 수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 발언이 “SK뿐 아니라 야구계 전체를 향한 고언이었다”고 밝혔다. “9·10구단 만들고 ‘야구판이 커지는구나’ 싶겠지만, 나는 굉장히 우려한다.”

왜일까. 아직 프로야구가 비즈니스 모델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고,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현실에서 단기적 승패에만 함몰되다가는 한순간에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 전 사장이 8년 동안 잘한 일로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민선’을 꼽는 것도 그래서다. “메이저리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커미셔너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된다. 그래야 지자체와 협상력이 생긴다. 그리고 KBO부터 비즈니스 조직화가 이뤄져야 한다. (전 구단) 통합마케팅은 그 출발점이다.”

신 전 사장은 야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2005년 4월 취임했다. 야구단 CEO가 되고나서야 야구가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삶의 터전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모르고 타성에 젖어있는 야구판이 이상하게 보였다. 얼마나 위기에 처했는지, 절박함이 안 보였다는 얘기다. 1년 반의 시행착오를 거쳐 2006년 겨울 스포테인먼트를 꺼내 놓았다. SK의 스포테인먼트는 한국 프로스포츠 마케팅의 혁신 사례로 꼽힌다. 2004년 33만7674명이던 문학구장 관중은 2012년 106만9929명으로 증가했다. “익숙함과의 결별”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신 전 사장은 자평했다.


○야구단 사장의 리더십이란?

신 전 사장의 리더십은 단순명료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깨닫는다. ▲상황을 타개할 컨셉트와 방향을 찾기 위해 학습한다. ▲협업으로 목표를 실행한다.

사실 야구단은 독특한 회사다. 실적이 매일 발표되는데, 정작 구단 직원은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돼 있다. 그래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야구는 감독에게’라는 식의 관리형(위임형) 리더십이 이상적으로 비쳐져왔다. 비전문가인 구단 사장은 야구에 개입하지 말고 지원만 잘해주면 된다는 관점이다.

야구단 CEO만 8년을 한 신 전 사장은 “관리형 리더십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기본만 해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미안했지만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거듭된 독서와 토론과 발표를 통해 아이디어를 끌어냈다. 못 따라오는 직원은 도태시키고, 성과를 내면 확실히 보상했다. “팀장은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배를 잘 키워야 한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더라. 후배들을 잘하게 하는 것이 리더의 책임이다.” 신 전 사장이 마지막 작품으로 SK에 육성팀을 만들고, 강화도 2군 훈련장을 짓기로 한 것도 육성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물이다.


○프런트와 현장의 관계란?

신 전 사장은 재임기간 8년 중 7차례나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이 중 6번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3번 우승했다. 최고의 순간으로는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꼽았다. 창단 첫 우승이라 더 각별했다. 그러나 이 우승을 함께 해낸 김성근 전 감독과의 결별 과정은 신 전 사장에게 상흔을 남긴 일이었다. “스포테인먼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적하고 맞물려 돌아간 덕분이다. 김 감독을 그런 전제에서 영입했고, 잘 하셨다. 결국 마지막에 리더십의 충돌이 있었지만. 지금도 고마워한다. 서로 ‘야구계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목표는 같았으나, 방향이 달랐다. 조정하는 과정에서 최종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SK 야구의 초석을 다져놓고, 한 단계 올려놓으셨다.” 사장 재임기간 말을 아꼈던 신 전 사장은 이렇게 결별 이후 최초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프런트와 현장 간 소통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프런트가 들어가야 할 부분과 안 들어가야 할 부분을 잘 봐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감이다. 그래서 사장은 야구인들의 풍토를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야구단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

SK의 스포테인먼트는 그린스포테인먼트, SQ로 해마다 진화했다. 환경, 교육, 다문화 가정 등 시대적 이슈를 선점해 마케팅에 활용했다. 신 전 사장은 마케팅을 넘어 야구단의 사회적 책임을 말했다. “야구인은 야구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다. 지속성이 없으면 이벤트로 끝난다. 국가도 지원해주는 시스템으로 받쳐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 전 사장의 8년 경험은 한국 스포츠의 자산이다. 신 전 사장은 “내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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