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H]김기천 “만년 과장 덕에 만년 무명 날렸죠”

입력 2013-05-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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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기천. 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노래한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고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진한 이야기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우, 묵직한 무게감으로 변치 않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 명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스태프 등 각 분야에서 묵묵히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인물들의 사람 냄새(Human)나는 따뜻한 이야기(History)를 ‘스토리 H’를 통해 전합니다.


■ ‘직장의 신’ 만년과장 고정도로 뜬 명품조연 김기천이 사는 법

28년간 회사에 몸 바친 고정도 과장
20년간 연기에 몸 바친 나와 닮은꼴
‘직신’10회서 주인공 잊지 못할 행복
유명세? 알아보는 이 조금 많아졌죠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시장 한 구석 순댓집에서 막걸리에 얼큰하게 취한 50대 중년 남성이 부르던 ‘아빠의 청춘’은 힘이 넘쳤지만 구슬펐다.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만년 과장 고정도 역의 김기천(56)을 보면서 누군가는 요즘 부쩍 어깨가 쳐진 아버지를, 남편을, 혹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극중 고정도는 회사에 28년간 근무하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후배들에게 ‘짐짝’ 같은 존재로 여겨지며 권고사직을 받았다. 입사할 때 받은 손목시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고물’이 된 지 오래다.

4월30일은 김기천의 연기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 방송된 ‘직장의 신’ 10회의 부제는 ‘고과장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이날 만큼은 고 과장, 김기천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부담감이 컸다. 내가 나와서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연기 못하는 게 들키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면서도 “촬영 중이라 본방송을 보지 못했는데 10회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보니 문자와 축하전화가 많이 와 있더라. 늘 외롭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데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참 행복했다.”

김기천은 고 과장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짜릿한 순간을 자주 겪고 있다. ‘고정도’와 ‘배우 김기천’, ‘자연인 김기천’이 일치할 때다. 그만큼 몸에 편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은 셈이다.

김기천은 배우로 밥벌이를 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늘 ‘그 아저씨’로만 불렸다.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과 ‘직장의 신’으로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유명세’를 누리지만 여전히 자신을 ‘무명’이라고 했다.

인터뷰 당일, 사진 촬영을 마친 그에게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헤헤, 나 같은 사람을 뭘…”이라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수줍음이 진하게 묻어났다.

배우 김기천. 사진제공|KBS



● 30대 소심인, 극단 아리랑의 문을 두드리다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나요?”

1990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대화 상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소심한 한 남자는 극단 ‘아리랑’의 문을 두드린다. 시골에 살면서도 가끔 ‘겉멋이 들어’ 연극을 보러 다니던 때였다. 그 막연한 동경이 그를 무대로 이끌었다.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유명하지 않아도, 수입이 없어도 배우로서 자긍심만은 최고였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 출연하면서 활동 무대도 영화로 넓어졌다.

젊은 시절의 호기로움은 이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로 바뀌었지만 연기와 인생, 자유를 고민하던 그 곳에서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도 만났다. 불혹이 되어서야 가정을 꾸린 그는 지금 중학교 3학년생, 1학년생인 아들과 딸의 아빠다. 그는 “결혼을 하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리라” 다짐했지만 “사랑이라는 게 받은 만큼 주는 거더라. 힘든 가정형편에 어려서 보살핌을 못 받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에게 마음처럼 잘 해주는 게 쉽지 않다”며 옅게 웃었다.

언젠가부터 영화가 주 무대가 되면서 그의 연기 인생 8할을 차지하는 연극에 대한 그리움도, 두려움도 커졌다. 무대에 오를 계획을 묻자 “무섭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작은 소극장이라도 무대에 오르려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낼 각오를 해야 한다. 무대는 절대 ‘뽐내기’ 하는 곳이 아니다. 신성한 곳이다.”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일산에서 광화문까지 ‘마실’을 나왔다는 김기천은 “오랜만에 서울에 왔으니 나들이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대학로. 지방에서 연극을 하는 후배들이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데 응원이라도 가야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연극 무대가 두렵다는 말 뒤에 그가 작은 소리로 내뱉었던 “아, 연극 얘기하니까 또 무대가 그립다”는 말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 김기천은 누구?

1957년생. 극단 아리랑 단원으로 입단 후 1993년 영화 ‘서편제’를 통해 영화계 입문.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축제’ 등 1990년대 영화의 단역으로 시작해 2000년대 ‘혈의 누’ ‘짝패’ ‘전우치’ 등에서 존재감 있는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가 이름을 올린 영화만 60여 편. 올해 ‘7번방의 선물’에서 서노인 역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또 다른 주인공이 됐다.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icky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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