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 사커에세이] 레바논 원정경기, 선수들의 안전에 만전을…

입력 2013-06-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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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31일 오전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의 도재승 2등 서기관이 대사관 앞에서 무장 괴한에 의해 납치됐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외교관 납치사건이었다. 온 국민은 치를 떨었다. 종교 분쟁으로 끊임없이 내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에서 한국 외교관이 왜 납치됐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언론은 연일 납치 사건을 보도했다.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채 기나긴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지루한 협상 끝에 1년9개월 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레바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있다.

도 서기관이 납치된 장소는 바로 베이루트 시내다. 그런데 그곳에서 5일 새벽(한국시간)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 한국-레바논의 경기가 벌어진다. 몇 년 전 가본 베이루트 시내에는 포탄으로 구멍이 뻥뻥 뚫린 대형 건물이 수두룩했다. 공포 분위기였다. 더구나 무장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경기장 경비도 군인들이 담당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내전은 여전하다.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 활보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6일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 인근에 포탄이 떨어져 주민들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외교부와 대한축구협회는 좌불안석이었다. 선수단 수송을 위한 전세기를 띄우는 문제와 원정 응원단의 탑승 문제 등을 놓고 긴박한 논의가 계속됐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은 급변했다. 급기야 제3국 개최 카드까지 나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열렸던 국제축구연맹(FIFA)총회에 참석해 FIFA관계자와 레바논 원정경기에 대한 안전 확보는 물론이고 제3국 개최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일이 촉박해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만큼 불안했다는 방증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세기는 투입되지만 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는 원정 응원을 포기했다.

베이루트에 파견된 본지 박상준 기자는 현지 공항 도착 후 “내전으로 치안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현지에 와 보니 평온함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외신 보도만 보면 총알이 난무할 것 같지만 현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현지인들도 아무렇지 않다는 반응이라고 했다. 한반도에 북한의 핵 위협이 전해졌을 때 외국인들이 느끼는 그 정도 수준이라고 했다.

평온한 분위기라면 다행이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중동이란 지역이 워낙 가변성이 많은 지역이고, 테러 위협이 상존해온 터라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축구경기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에 언제나 테러범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안전은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FIFA, 레바논축구협회와 긴밀한 협조 체제가 이뤄져야한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안전문제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예선전의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불행에 대비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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