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욱 28년 유니폼 벗고 현역시절을 기억하다

입력 2013-07-01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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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욱. 스포츠동아DB

한국배구연맹(KOVO)이 7월1일 선수등록을 마감했다. 2013~2014시즌 프로배구 V리그에서 활약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등록을 하는 날, 제7구단 러시앤캐시는 보도자료를 냈다. 수석코치로 삼성화재의 석진욱(37)을 영입했다고 알렸다. 여오현, 고희진과 함께 삼성화재를 이끌어가던 30대 베테랑 가운데 최선참이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코트에서 모범이 되는 그의 존재가치를 알기에 현역생활을 계속해달라고 했다. “운동을 힘들게 안 해도 되고 후배들을 지도하는 플레잉 코치로 1년만 더 뛰어 달라”고 했지만 고심 끝에 유니폼을 벗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수였던 형을 따라 다니다 시작했던 배구선수 생활이었다. 28년간 화려했지만 수많은 부상과 고통을 함께 했던 현역생활을 마친 소감을 묻자 “먼저 축하해 달라”고 했다.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았다, 발목이 너무 아파 신 감독님께 몸 상태를 말씀 드렸다. 억지로 끌고 나갈 수는 없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배구가 국제대회 정상에 섰을 때마다 태극유니폼을 입고 봉사했던 석진욱은 수비형 레프트의 롤 모델로 배구 팬과 후배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는 석진욱과의 일문일답.


-창단 팀 러시앤캐시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동안 좋은 동료를 만나고 훌륭한 팀에 있어 이기는 경기만 했다. 운이 좋았다. 좋은 것만 했다. 그래서 두렵다. 지도자로 간다면 어떻게 할지라는 생각이 든다. 신생팀은 당분간 성적도 나쁠 것이고 여러모로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선수들과 부딪쳐가며 배우고 싶었다. 김세진 감독과 추구하는 배구가 같았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배구가 어떤 것인지

“선수 위주의 배구다.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다. 스타 감독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도 안다. 김세진의 러시앤캐시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자. 선수가 항상 앞에 서고 선수가 잘해서 배구를 이겼다는 소리를 듣게 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도 워낙 감독이 스타라 선수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감독을 최대한 잘 모시고 많이 배우겠다. 선수들이 경기에 나가면 열정적으로 플레이하고 경기 뒤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하고 싶다. 선수와 감독은 친해야 하지만 너무 격의가 없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팀의 문화를 만들고 싶다.”


-김세진 감독이 코칭스태프 구성을 오랫동안 미루면서 기다렸다. 처음 어떤 말로 함께 하자고 했는지 궁금하다.

“집에 찾아와서 같이 하자고 했다. ‘오고 안 오고는 네가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나는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자주 연락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도 반대했다. 안정적인 삼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도 그렇고, 선수생활을 더 할 수도 있는데 왜 모험을 하냐며 말렸다. 나도 그 말에 수긍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아내를 설득하고 있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결정했다. 결국 아내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어떻게 배구를 하게 됐는가.

“초등학교(인천 주안초) 3학년 때 2살 위의 형을 따라 다니면서 배구를 했다. 공을 주워주면서 시작했다. 형과 키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형이 나보다 더 운동신경이 좋았는데 단지 내 키가 커서 선수가 됐다. 초등학교 때 동료들이 좋았다. 최태웅 장병철 노경택 김동승 등이었다. 동료들이 배구를 잘 해서 서로 경쟁하다보니 실력이 좋아졌다. 저 친구가 공격을 잘하면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선의의 경쟁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우승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을 것 같다.

“특별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우승을 했고 6학년 때는 전승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인하부고 43연승) 때도 해마다 우승을 했다. 졸업 반 때는 전승을 했다. 한양대 때도 2~4학년 동안 전승(51연승)을 했다. 삼성화재에 와서도 많은 우승(77연승)을 했고 부산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좋은 동료 팀 감독님을 만나 우승을 많이 경험했다.”


-수비 잘하는 레프트로 팬들은 기억한다. 특별히 잘 하게 된 비법은?

“솔직히 비법은 없다. 초등학교 때 동료들과 경쟁하면서 열심히 하다보니 기초가 좋아진 것 같다. 재활하고 팀에 복귀하면 나도 수비가 어렵다. 훈련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감각이 올 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훈련이 많아야 하지만 수비 훈련은 하는 사람이나 시키는 사람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오랜 선수생활동안 부상도 많았다.

“무릎 5번, 어깨 1번 등 총 6번 수술을 했다. 왼쪽 무릎만 3번 했다. 지금도 오른쪽 무릎에 핀이 박혀 있어 한 번 더 해야 한다.”

-부상도 그렇지만 재활도 어지간한 의지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배구를 포기했을 텐데 28년이나 배구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아파서 훈련이 힘든 적도 많았지만 배구가 재미있었다. 이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강타를 잡아냈을 때나 블로킹으로 막았을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그 느낌이 있어서 배구를 하는 것이 좋았다.”


-수비형 레프트의 롤 모델이다. 선수 석진욱의 롤 모델은 누구였나.

“강성형 코치다. 한양대 선배였는데 대학시절 졸업 때까지 서브리시브 실수를 한 것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배가 배구를 멋있게 했다. 나와 같은 키인데도 공격을 더 잘했다. 대표팀에 있을 때 경기를 함께 하면 내 커버를 해 주곤 했다.”


-자신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뛰어난 선수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과 신체조건에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을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내가 최선을 다 했는지 후회가 된다. 나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이번 월드리그를 보면서 새삼 수비형 레프트 석진욱의 존재감이 드러나던데.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것이고 사실 후배들이 나보다 더 잘한다. 후배들을 옛날과 비교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사실 옛날에는 서브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요즘은 다들 서브가 좋다. 앞으로 더 힘들 것이다. 후배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끝으로 은퇴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

“우승을 한 번 했다면 그것이 기억나겠지만 모든 우승이 다 중요하고 기억난다. 1995년 대학 1학년 때 처음 교체로 들어간 경기가 가장 생각난다. 그때 잘 해서 다음 경기에 또 나가고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우승도 떠오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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