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붉은악마 선 넘은 걸개…후폭풍 부나?

입력 2013-07-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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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서포터 붉은악마가 28일 한일전에서 내건 펼침막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그라운드 안으로 끌어들였고, 보이콧으로 지지자의 본분을 망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잠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이성 잃은 한일전 응원전쟁

축구협 강제철거에 응원 보이콧 논란
日정부·언론 “정치적 걸개 유감” 표명
日축구협 항의시 외교적 마찰 가능성

동아시안컵 한일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일본 정부는 29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명의로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가내건 걸개에 대해 깊은 유감을 밝혔다. 일본 언론도 걸개를 문제 삼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불허한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경기장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붉은악마는 28일 한일전을 앞두고 대형 걸개를 준비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이순신 장군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새겼다. 나머지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격언을 적었다. 글귀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한민족의 의식을 계몽하기 위한 일침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역사 논란에서 비켜서지 말라는 자극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일본에 질 수 없다는 팬들의 강렬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대한축구협회는 경기 전부터 FIFA 규정을 들어 걸개를 금지토록 했다. 유대우 부회장은 붉은악마를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동아시안컵은 국제규모의 대회이고, 2017 U-20 월드컵 유치를 위해 주변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붉은악마의 생각은 달랐다. 사실을 전하는데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붉은악마 측은 “협회의 논리가 부족하다”며 강행 뜻을 밝혔다. 시작 휘슬이 울리자 모든 펼침막이 내걸렸다. 협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경호요원을 동원해 펼침막을 거뒀다. 붉은악마는 항의 표시로 후반전부터 응원을 보이콧했다.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다. 아직까지 일본축구협회의 반응은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항의가 들어온다면 수위 등을 놓고 추후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28일 한일전이 열린 잠실주경기장에서 일본 응원단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하자 축구관계자가 제지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축구 게시판은 뜨거워졌다. 옹호와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부 팬들은 일본도 오래 전부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응원도구로 활용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규정은 어디서든 지켜져야 한다. 국가법이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듯 경기장 내 규정도 준수돼야 한다. 욱일승천기는 따로 대응하되, 우리는 규정대로 행동해야 한다. 일본이 욱일승천기를 흔들었다고 똑같이 대응한다는 건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붉은악마는 대표팀을 지지하는 비영리단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는다. 그대들이 가는 곳이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은 많은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부는 “권력집단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팬들은 1년 전 박종우(부산)의 ‘독도 세리머니’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박종우는 의도치 않은 행동 하나로 6개월 동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월 동메달을 되찾았으나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팬들도 당시의 분노와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기억에 머물면 안 된다. 학습효과가 필요하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건 자존심이 아닌 축구대표팀이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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