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쓰는 HE-스토리] 박정우 “승부의 불확실성은 고통이자 매력”

입력 2013-10-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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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범부터 지금까지 경륜 현장을 떠나지 않은 베테랑 기자 박정우. 20년 관록의 경륜 전문가인 그가 팬들에 바라는 소망은 “소액 베팅을 생활화 하고 관전 스포츠로 즐기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 경륜위너스 예상부장 박정우

1994년 출범 지켜본 유일한 현역 기자

“초기엔 관상으로 예상하던 팬도 있었죠
선수·팬과 호흡하는게 좋아 현장 지켜
정확한 정보 통해 선택 돕는 데 포커스”


“1994년 10월 15일, 지금도 그날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그려진다. 한국경륜이 첫 출발을 하는 날이었으니까. 아침부터 무심한 장대비가 쏟아져 예정됐던 개막 첫 주 사흘간의 경주가 모두 취소됐다. 밤을 새워 만든 책들이 빛도 못보고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경륜 전문지 ‘경륜위너스’의 박정우(41) 예상부장은 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1994년 경륜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째 치열한 승부의 현장을 지킨 유일한 현역 기자다. 경륜의 산 증인 박정우 기자를 만나 한국경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었다.


- 경륜 출범을 6년이나 준비했는데 개막 경주를 취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는 돔 경기장이 아닌 올림픽공원의 사이클 경기장이었는데 나무인 벨로드롬이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운영본부로서는 경주를 강행했다가 첫날부터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 경주는 언제부터 정상적으로 진행됐나.

“2주차의 첫 날도 비로 취소됐다. 둘째 날인 10월 22일에 비로소 첫 경주가 열렸다. 첫날 관중은 500여명, 매출은 1200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 초기에는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선수, 운영본부, 고객 모두 좌충우돌했다. 기자실이 없어 경기장에서 팬들과 어울려 취재하고 예상도 전했다. 팬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입상 선수를 예상했다. 관상학, 작명학부터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듯 경우의 수와 확률을 이용하기도 했다.”


- 출범 초와 현재 경륜을 비교하면.

“당시 선수들은 경주운영 노하우가 없어 대체로 전개가 단조로웠다. 자리바꿈 없이 여섯 바퀴를 일렬종대로 돌다 끝나는 경주가 많았다. 1995년에 2기들이 들어오면서 라인(연대) 경주가 생겼고, 젖히기와 마크 전법이 등장해 경주가 점차 흥미로워졌다. 요즘은 학연, 지연, 기수, 친분 등 연대가 다양하고 선수들의 두뇌플레이가 많다.”


- 경륜 전문 기자 중 1994년 출범을 지켜본 유일한 현역이다.

“원년 출신이 이제 세 명 남았는데 나를 뺀 두 명은 발행인과 편집장이다. 한때 전문지를 창간해 경영에 나설까 고민했지만 선수, 팬과 호흡하는 게 좋아 계속 현장을 지키고 있다.”


- 당시는 경륜이 생소했을텐데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대학에서 학과지를 만들면서 기자를 꿈꾸었다. 언론인양성아카데미에서 실무를 익히고 지인 추천으로 입사했다. 새 분야를 개척한다는 의욕으로 일본 경륜지를 번역하며 공부했다.”


- 기억에 남는 선수와 경주는.

“원년부터 지켜본 장보규, 허은회 등 1기 선수들은 거의 가족같다. 경주는 잠실 시대를 마감하는 레이스인 2005년 올스타전을 잊을 수 없다. 추워서 입김으로 손을 데워가며 봤는데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 경륜의 매력은 무엇인가.

“승부의 불확실성은 고통이면서 매력이다. 분석을 통해 우승자를 적중시켰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 전문가로서 입상 예상 선수를 꼽는 기준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추구한다. 가끔 직관적인 ‘촉’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적중률이 떨어졌다. 책(전문지) 편집도 일방적으로 베팅을 유도하기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고객의 선택을 돕는 데 포커스를 맞춘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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