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 사커에세이] 홍명보호 조급할 필요없다 히딩크가 그랬던 것 처럼…

입력 2013-10-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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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홍명보 감독은 진짜 승부는 내년 브라질월드컵이라고 늘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지금 조급할 필요는 없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 마지막까지 선수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강팀과 평가전을 통해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스포츠동아DB

몇 년 전만 해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입국하는 날에는 공항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그의 상품성은 월드컵이 끝난 지 한참이 흘렀어도 여전했다. 그의 발언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아울러 그는 언변을 타고났다. 기자들이 뭘 원하는 지를 꿰뚫고는 입맛에 맞는 코멘트를 날렸다. 그러니 기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그가 올 때마다 ‘이제는 그만 좀 왔으면…’ 하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입국 소식은 무시해도 될만한 수준이 돼버렸다. 뉴스가치가 뚝 떨어진 것이다. 히딩크의 동선에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흐르는 세월은 신화의 존재도 퇴색시킨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16일 열린 2002한일월드컵 멤버들의 오찬이 좋은 예다. 예전 같으면 취재경쟁이 치열할 법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 자리에는 히딩크를 포함해 대표팀 홍명보 감독, FC서울 최용수 감독 등이 참석했다. 10월 두 차례 A매치를 마친 홍 감독이 참석해 그나마 빛이 난 자리였다. 이날 히딩크의 발언은 주목받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들려줄 법한 가벼운 덕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흘리기엔 너무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의미를 가슴 속에 담아야만 홍명보호가 월드컵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히딩크는 “브라질과 같은 강팀과 경기를 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약 팀을 상대로 한 경기를 이겼다고 기뻐하기 보다는 강팀과 경기를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는 코멘트였다. 누구나 할 수 있은 이야기이지만 히딩크이기에 무게가 달랐다.

실제로 히딩크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신화를 만들어냈다. 2002월드컵 개막 전에 치른 평가전에서 프랑스와 체코에 0-5로 지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퇴진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국내 전문가들은 히딩크에게 크게 2가지를 요구했다. 주전 베스트 11을 조기에 확정해 조직력을 키우라는 것과 무조건 강팀 보다는 이기면서 자신감을 키워줄만한 약한 상대도 고르라고 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베스트 11은 고사하고 전술 훈련 없이 매일 파워프로그램을 통해 체력을 다졌다. 지더라도 강팀과의 평가전을 고집했다. 아울러 선수들과의 심리전을 통해 팀을 통솔했다. 주전을 꿈꾸는 선수들은 그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뛸 수밖에 없었다. 강팀과 대결에서 죽기 살기로 뛴 것은 물론이다.

결국 국내 전문가들이 틀렸다. 베스트11 선정보다는 체력 강화와 선의의 경쟁이 우선이었고, 약 팀보다는 강팀과 평가전을 통해 실력을 키웠기에 4강도 가능했다. 당시 나도 전문가들과 비슷한 기사를 쓴 점을 솔직히 고백한다.

홍 감독은 그 누구보다 히딩크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 홍 감독은 “도전적인 팀을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2002년 월드컵을 준비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활용할 생각이다”고 말했는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 감독도 경험했듯 마지막까지 선수 간 선의의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월드컵까지 남은 A매치는 약 팀 보다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강호와 맞붙어 전력을 끌어올려야한다. 히딩크에게 배운 걸 그대로 써먹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진짜 무대인 월드컵에서 웃기 위해서는 지금 조급하면 절대 안 된다.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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