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강타자…여고 교사의 행복한 변신

입력 2013-10-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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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체육선생님, 토요일과 일요일은 여자야구팀 감독이자 강타자. 과천여고 교사이자 플레이볼의 감독 겸 4번타자 정혜민 씨의 ‘이중생활’은 특별하고 행복하다. 스포츠동아DB

■ 플레이볼여자야구단 감독 겸 선수 정혜민

주중엔 여고 체육교사…학생들과 캐치볼
개인 글러브까지 갖춘 여고생도 5명이나

야구장에 들어서면 활기…주말만 기다려
6할 타자…올스타 선발에 한일전 대표도


휙 하고 날아와, 퍽 하고 꽂히는 순간. 글러브를 뚫고 손바닥까지 닿는 그 쾌감. 그 누가 ‘야구는 보기에는 좋지만 직접 하기에는 어려운 스포츠’라고 했을까. 2개의 글러브,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금세 푹 빠져들 수 있는 것이 캐치볼이다. 프로야구선수들도 아무리 훈련이 힘들더라도 캐치볼을 하는 순간만큼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여고생과 야구-. 야구를 사랑하는 여고생이 관중석에 앉아있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여고생들이 직접 글러브를 끼고 힘차게 공을 던지는 모습은 여전히 쉽게 보기 힘든 광경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천여고에선 마주보는 선생님과 학생이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과천여고 체육 교과 담당 정혜민(33) 교사의 일주일은 조금 특별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체육교사지만 주말에는 여자야구팀 플레이볼의 감독이자 선수다.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주최 LG전자·익산시, 주관 한국여자야구연맹·익산시야구협회) 올스타로 선발되고, 일본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를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포지션은 투수 겸 1루수. 타격 기록을 살펴보면 금세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이번 대회 8경기에서 25타수 16안타 9타점. 타율은 0.640, 장타율은 0.960이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친 OPS는 무려 1.627에 달할 정도로 강타자다.

과천여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이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이중생활’을 알고 있을까. 정혜민 감독은 웃으며 “야구를 좋아하는 몇 명만 알고 있다”고 밝혔다. 주중이면 본업인 교사생활에 몰두하는 정 감독은 “학생들과 직접 캐치볼도 한다. 요즘 야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함께 공을 주고받기도 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놀라운 사실은 개인 글러브를 갖고 있는 학생들도 제법 될 정도로 여고생들도 ‘보는 야구’를 넘어서 ‘직접 즐기는 야구’의 참맛을 느끼고 있는 점이다. 정 감독은 “5명 정도는 개인 글러브를 갖고 있다. 함께 캐치볼도 하고 프로야구 경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이 야구에 입문한 것은 우연히 TV에서 본 ‘선수 모집’ 자막 때문이다. 2003년 체육교육과 학생 시절 야구수업을 들으며 ‘참 재미있는 스포츠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야구를 직접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8년 광주에 머물 때 지역방송 TV 자막으로 ‘여자야구 선수 모집’ 자막을 보고는 곧장 전화를 걸어 광주 스윙이글스에 입단한 뒤로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체육 전공자만의 특별한 재능은 그라운드에서 금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투수와 1루수, 외야수까지 도맡는 강타자가 됐다. 2010년 집과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팀을 떠나야 했지만 2012년 창단된 플레이볼 여자야구단의 감독과 선수로 다시 녹색 다이아몬드를 밟았다.

주중 학교에선 생리학을 전공한 ‘체육학 박사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주말에는 그라운드에 온 몸을 던지는 이중생활. 체력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일상의 연속이다. 그러나 정 감독은 “서울에서 익산까지 주말에는 차가 꽤 막혀 이동이 어렵지만, 야구장에만 들어서면 피곤함이 사라진다. 주중에는 계속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며 웃었다.

한·일전에 출전할 대표팀 선발에 대해 정 감독은 “일본 선수들은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밟아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운다는 생각으로 뛰겠다. 그러나 승부에선 꼭 이겼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나보다 잘 하는 선수의 기량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모든 운동선수의 공통된 바람이겠지만, 정 감독에게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야구는 혼자 잘해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9명이 하나가 되면 그 힘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9배 이상 강해집니다. 야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여자야구도 축구, 농구, 배구처럼 초·중·고 선수들이 육성되고 실업과 프로팀이 창단돼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기틀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국여자야구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정혜민 감독의 아름다운 꿈은 진행형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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