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기자의 이슈&포커스] ‘그들만을 위한’ 스플릿 폐지안…이게 최선입니까?

입력 2013-10-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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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단일리그인가

성적 스트레스·감독 생명연장 등 이유
연맹 실무위원회 ‘폐지’에 압도적 지지
스플릿 도입 근본 목적과 어긋난 행보
‘정규 3R+스플릿1R’ 제3의 안도 무시


2년 간 시행된 스플릿시스템(시즌 중간 순위로 상·하위 리그를 나누는 제도)을 유지하느냐 폐지하느냐가 화두다. 16일 열린 프로축구연맹 실무위원회에서는 스플릿 폐지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1일 K리그 감독자 회의도 비슷했다. 뻔히 예상된 결과다. 스플릿 도입 후 감독들은 파리 목숨이 됐다.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실무위도 마찬가지다. 실무위는 구단 사무국장이 중심이다. 선수단 다음으로 성적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가 사무국장이다. 이들의 의견을 객관적이라 보기 힘든 이유다. 스플릿 존속 여부를 논하려면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취지를 돌아보고 팬들을 불러 모으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앞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 왜 스플릿인가

스플릿을 도입한 가장 큰 목적은 빅 매치 양산이었다. 상위 팀끼리 대결을 통해 K리그의 자랑거리인 슈퍼매치(서울vs수원)와 같은 주목 받는 더비를 많이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상위스플릿은 거의 매 경기 관심을 끈다. 서울-전북, 전북-포항, 서울-포항과 같은 신(新)라이벌도 등장했다. 또 시즌 중간 상위스플릿에 들기 위한 중위권 팀들의 치열한 경쟁도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반면 스플릿 폐지론자들은 상위스플릿의 우승 경쟁, 하위스플릿의 강등 경쟁을 하는 팀들을 제외하면 동기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단일리그라 해도 시즌 중위권 팀들끼리의 대결은 어지간해서 주목받기 힘들다. 차라리 상위스플릿 팀들만이라도 확실히 살려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지 않은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하위스플릿 팀은 후반기에 아무리 잘 해도 우승이나 3위(AFC 챔스리그 진출 마지노선) 안에 들 수 없으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도 있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프로축구가 지금 큰 위기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 불평등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 스플릿 폐지 뒤의 불편한 진실

스플릿 폐지론자들이 단일리그로의 회귀를 원하는 속내가 뭔지도 의구심이 든다.

스플릿은 2년 전 한시적으로 도입한 제도니 약속대로 폐지하자는 주장은 전형적인 물 타기다. 연맹은 도입 당시 분명히 2년 후 재협의하기로 했다. 이번 실무위 때도 연맹 신명준 팀장이 재협의가 맞음을 확실히 했다. 이런 억지는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

구단 관계자들, 감독들은 왜 스플릿을 거북해할까. 혹시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프로연맹 사무국 직원들은 얼마 전 두산-LG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를 잠실에 가서 직접 봤다. 한국 시장은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직원들은 잠실벌을 가득 메운 관중과 열정적인 응원을 보며 부러워하는 한편 많은 자극도 받았다. 한 직원은 “어떻게 하면 1명이라도 더 많은 팬을 부를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구단 생각은 다른 듯 하다. 실무위에서 언론과 팬의 의견도 두루 듣기 위해 공청회를 한 번 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몇몇 사무국장이 “우리 일을 왜 언론과 팬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느냐. 그들이 우리 고충을 알겠느냐”며 묵살했다고 한다. 프로스포츠의 생명인 동시에 존재 이유가 팬인데 이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데 할 말이 없다. 또한 그들이 말한 고충은 뭘까. 바로 하위스플릿 탈락의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 팀이 하위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차라리 없애버리자고 밀어붙인다. 스플릿 폐지 주장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 묻혀버린 제3의 안

연맹은 실무위에서 제3의 안도 내놓았다. 스플릿을 유지하되 정규라운드를 3라운드 치르고 스플릿라운드를 1라운드로 치르는 3+1 방식이다. 이 경우 하위스플릿으로 내려가는 기간이 줄어 현행 방식의 단점이 일부 상쇄된다. 팀 당 5경기씩 치르는 마지막 스플릿라운드는 플레이오프 같은 분위기로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스플릿 폐지를 강력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묻혀 이 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공은 이사회로 넘어갔다. 연맹은 11월 중 이사회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스플릿이든 단일리그든 당분간은 변화 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해진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게 연맹의 방침이다. 이번 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리 팀, 우리 감독만 생각하지 말고 한국 프로축구 흥행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을 내려주길 바란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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