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두산 유희관 “두산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

입력 2014-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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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 사진 | 애리조나=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동아닷컴]

지난해 두산이 배출한 최고의 ‘히트상품’은 투수 유희관(28)이었다.

2009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지난 4년간 철저한 무명이었다. 프로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체 2군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았다.

상무에서 전역한 뒤 팀에 복귀한 그는 어렵게 찾아 온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며 지난해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며 두산 마운드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중간계투로 시즌을 맞은 유희관은 그토록 염원하던 프로야구 첫 승은 물론 시즌 10승 7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3.53의 호성적을 기록해 윤석환(은퇴) 이후 25년 만에 두산이 배출한 좌완 10승 투수가 됐다.

유희관은 빠르지 않은 구속을 지녔음에도 칼날 같은 제구력과 70km 후반의 느린 커브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이 때문에 그는 팬들로부터 강속구 투수를 일컫는 ‘파이어볼러’와 대비되는 ‘모닥볼러’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동아닷컴 취재진은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두산의 스프링캠프를 찾아 유희관을 만나 그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유희관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일본 전지훈련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간절하게 노력해서 실력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했는데 작년에 정말 많이 보여줬다. 비결을 꼽자면?

“사실 나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야구가 고팠고 제대 후 팀에서 내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현실이 절박했다. 정말이지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지훈련 때부터 최선을 다했는데 다행히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등 운도 많이 따른 것 같다.”

-이렇게 잘할 수 있는 선수가 그 동안 철저한 무명이었다. 프로입단 초기와 지난해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지난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자신감인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신인 때는 마운드 위에서 자신 있게 내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타자와 싸우는 대신 못마땅한 내 자신과 싸웠던 것 같다. 그러다 상무에 입대한 뒤 잦은 선발경험을 통해 1군이나 1.5군 선수들을 상대로 내 공이 통하는 걸 경험한 뒤부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제대 후 팀에 복귀한 후에도 계속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유희관. 사진 | 애리조나=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이번 질문은 팬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다. 작년 7월 13일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배지현 SBS스포츠 아나운서에게 선물을 건넸다. 기억하나?

“(웃으며) 그랬다. 기억한다.”

-당시 그녀에게 건넨 선물은 무엇이었으며 혹시 사심이 담긴 건 아닌지 궁금하다.

“선물은 별거 아니었다. 두산에서 판촉용으로 제작한 부채였는데 당시 구단 홍보팀에서 취재차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그런데 배지현 아나운서만 받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대신 전해준 것뿐이다. (웃으며) 사심은 전혀 없었다.”

-(웃으며) 믿겠다. 지난해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보너스가 힘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두둑이 챙겼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연봉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받은 보너스 액수가 더 많았을 만큼 두둑이 받았다. (웃으며) 하지만 당시 인터뷰에서 보너스 이야기를 한 것은 인터뷰가 너무 상투적으로만 흘러가면 이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나 지켜보는 팬들도 식상할 것 같아서 분위기 반전 차원에서 보너스 이야기를 한 것이다.”

-유희관 선수를 보면 다른 야구선수들과 달리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면서 말도 참 조리 있게 잘하는 것 같다.

“야구장에서는 물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 야구장에서 기자들을 만나도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도 하고 말을 건네는 편이다.”

-워낙 말을 재미있고 조리 있게 잘해서 은퇴 후 방송가에서 러브콜이 있을 것 같다.

“(웃으며)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은퇴 후 방송이나 해설 쪽에서 불러만 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다. 하하.”

-서울 라이벌인 LG도 현재 이곳 애리조나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하지만 두산이 LG보다 더 높은 북쪽에 있다. 이를 올 시즌 두 팀의 성적으로 봐도 되겠나?

“비단 두산뿐만 아니라 모든 팀들이 시즌 전에는 항상 1위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올 시즌 성적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웃으며) 당연히 우리 팀이 LG 뿐만 아니라 다른 팀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희관. 사진 | 애리조나=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시즌이 끝나고 열린 야구인 당구대회 8강에서 탈락했다. 당구실력은 야구만 못한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당구는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치는 편이라 당구수도 15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팬들을 위해 경기 후 짧은 댄스타임을 가졌다. 뛰어난 투구실력과 언변에 비하면 춤 실력은 별로 였다.

“(웃으며) 사실 춤도 잘 춘다. 그런데 당시 예정에 없던 일을 홍보팀에서 갑자기 요청하는 바람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 시즌 두산이 우승하면 팬들을 위해 멋진 춤 솜씨를 보여주겠다.”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주위에서 ‘유희관은 배짱이 좋다’는 말을 많이 했다.

“원래 배짱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좋은 성적이 나오자 심적으로 편해지면서 배짱도 좋아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결과론인 것 같다. 프로에 입단한 후 작년에 처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된 것은 물론 프로 첫 승과 포스트시즌 경험도 했을 만큼 단 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나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데 좋게 봐 주셔서 너무 고맙다.”

-미국에 오기 전에 “좌타자 공략법과 신무기인 포크볼을 장착하겠다”고 말했다. 캠프 초기이긴 하지만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두 가지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고 특히 좌타자를 상대로 피안타율을 내려야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해 낼 것이다. 지난 시즌에도 포크볼은 던졌지만 좀 더 타자들에게 위협적인 구종이 될 수 있도록 연마하고 있다. 투수의 경우 확실한 구종을 하나 더 추가하면 타자를 상대할 때 많이 유리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만의 포크볼도 완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전지훈련은 처음이다. 일본과 비교했을 때 장단점을 들자면?

“이곳 미국은 날씨가 따듯해서 몸을 만들기에 너무 좋은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음식도 잘 나와서 전혀 불편한 게 없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일본에 비해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 빼면 다 괜찮은 것 같다.”

-지난해와 같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향후 해외진출도 가능할 것 같다. 자격이 된다면 해외에 진출할 생각이 있다, 없다?

“과찬이다. 해외 진출은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FA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으려면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해외 진출은 정말이지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두산에서 계속 좋은 활약을 펼쳐 두산의 레전드로 남고 싶다.”

유희관. 사진 | 애리조나=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만약 유희관 선수가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운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뿐만 아니라 공으로 하는 구기종목을 다 좋아했기 때문에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축구나 다른 구기종목 선수로 뛰고 있을 것 같다.”

-‘유희왕’과 ‘모닥불러’ 등 팬들이 유희관 선수를 위해 지어준 별명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모닥불러’라는 별명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신선했다. 어떻게 저런 별명을 지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정말이지 기발한 발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희왕’이란 별명이 더 좋다. 왕이라는 것은 최고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팬들이 지어준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앞으로 가일층 노력하겠다.”

-유희관 선수 본인만의 징크스가 있다면?

“많지는 않다. 다만, 속옷과 양말 등 시합 날에만 입는 유니폼을 따로 정해 놓고 시합 날은 항상 그것만 챙겨 입는다.”

-유희관이란 이름을 알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 본인처럼 현재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또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얽매이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남보다 볼 스피드가 느리다. 하지만 제구력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단점인 볼 스피드에 얽매이기 보다는 좋은 제구력을 더 연마하고 극대화해서 단점을 보완했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신의 단점을 생각하며 한탄하기 보다는 한 가지씩은 있을 장점을 극대화해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한다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서 분명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활약 때문에 팬들이 올 시즌 유희관 선수에게 거는 기대치가 더 커졌을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작년과 달리 올해는 시즌 개막 때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맡을 것 같다. 몇 승을 하고 싶다는 수치 상의 목표보다는 프로입단 후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는 게 우선이다. 물론 팬들과 구단의 기대에도 보답해야 하는 것이 내 의무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부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초심을 잃지 않고 매 경기 혼신의 힘을 다한다면 분명 좋은 성적으로 팬들과 함께 웃을 날이 있을 것이다.”

-끝으로 유희관과 두산 팬들을 위해 한 마디 해달라.

“내가 크게 잘하는 실력도 아닌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좋아해 주셔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는 지난해 보여주었던 ‘미러클 두산’을 넘어 우승으로 팬들 사랑에 보답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올 시즌 팬 여러분들에게 우승이란 선물을 드릴 수 있도록 두산의 모든 선수들이 한 마음이 되어 최선을 다할 테니 올해도 많은 분들이 야구장에 와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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