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주년 특집] 김남일·이동국·설기현 “우리의 경험을 후배에게 전하는게 베테랑의 사명”

입력 2014-03-24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K리그 클래식을 대표하는 베테랑 3인방 김남일, 이동국(이상 전북), 설기현(인천·사진 왼쪽부터)은 자신들이 현역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스포츠동아DB

■ 노장보다 베테랑이 듣기 좋다

베테랑(Veteran).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숙련된 이들을 일컫는다. 관록과 경험이 빼곡히 쌓여 우리는 그들을 베테랑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 주위의 인식이 가장 중요한 잣대다. 하지만 베테랑은 외롭고 어렵다. 하나둘 곁을 떠나고 고독과 번민이 남는다. 그들 앞에 놓인 운명도 다르지 않다. 정든 그라운드를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론 남들의 차가운 편견과 마주한다. 젊은 선수들이 대세인 K리그 무대는 더욱 그렇다. K리그 클래식(1부)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베테랑 김남일(37)과 이동국(35·이상 전북), 설기현(35·인천)이 답했다. 이른바 ‘베테랑이 사는 법’이다.

김남일
“주어진 길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선배
감독님도 못하는 경기 긴장 조율하죠”

이동국
“젊은선수들 근성 대단…팀 애착은 부족
자기 역할에만 빠질때 방향 제시해주죠”

설기현
“어린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
은퇴 기로 선 능력있는 노장 보면 씁쓸”

● 베테랑을 입다


설기현에게 베테랑은 낯설지 않다. 벨기에와 잉글랜드,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2010년 종착지인 한국무대를 두드렸다. 한국나이 서른둘. 설기현은 “포항을 통해 K리그에 왔을 때부터 베테랑의 역할을 알게 됐다. 나이 많은 선수들도 있었지만 어린 선수들이 훨씬 많았고, 선배들에게 의지하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되돌아봤다.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그저 배운 대로 행동했다. 그는 “유럽에서 넘어오니까 선수들이 호기심을 가졌다. 훈련이나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부터 몸 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달라보였던 거 같다”고 말했다. 포항과 울산을 거쳐 인천에서 맞는 5번째 시즌. 울산에서 국가대표 공격수로 성장한 김신욱은 “음식부터 자기관리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단짝 김남일도 “기현이와 함께 있는 동안 어느 때보다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김남일과 이동국은 베테랑이란 표현이 아직 낯설다. 주위에서 불러주니까 베테랑이 됐다고 느낀다. 이동국은 ‘노장’이란 표현보단 듣기 좋다고 웃었다.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얘기해주고 방향을 잡아준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김남일은 그저 주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고 했다. 그는 “앞선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곧 베테랑이다. 어느새 선배 자리에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할 위치가 됐다. 보고 체험한 것을 전할 뿐이다”고 자신을 낮췄다.


● 베테랑이 되다

베테랑은 어느 시기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설기현은 “공격과 수비 상관없이 해야 될 것들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스스로 떳떳해야 후배들을 이끌 수 있고, 후배들도 선배를 귀감으로 삼아 믿고 따른다.

역할은 분명하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동국은 “젊은 선수들의 프로근성이 대단하다. 하지만 팀에 대한 애착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바깥에선 먼저 다가서야 한다. 소통해야 하는 것이다. 설기현은 “어린 선수들이 다가오는 건 쉽지 않다. 베테랑이 분위기를 잡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라운드에서 더 중요하다. 이동국은 “경기가 안 풀리거나 상황이 나빠지면 벤치에서 하는 얘기가 안 들린다. 선수들은 자기 역할만 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반면 경험 있는 선수들은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전했다. 김남일은 “경기 때에는 긴장을 적절히 조절해준다. 많이 가져서도 적게 해서도 안 된다. 이는 감독님이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베테랑을 중용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베테랑 예찬론은 이렇다. “어떤 선수는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기운영은 젊은 선수들이 따라갈 수 없다.”


● 베테랑을 넘다

어느덧 현역 이후를 바라볼 나이. 그전에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 있다. 협소해질 대로 협소해진 K리그 무대에서 베테랑의 인식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둘 옷을 벗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편치 않다고 한다. 이동국은 “더 뛸 능력이 있는데도 팀을 못 구해 은퇴하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설기현도 “나이 먹은 선수들의 자리가 K리그에는 많지 않은 거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젊은 선수처럼 많이 뛸 수는 없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해줄 수 있는 선수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다”고 했다.

전북에서 은퇴한 김상식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은 레전드가 없는 사회다. 비단 K리그 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그렇다. 명품을 앞에 놓고도 짝퉁(모조품)으로 의심한다.” 베테랑이 인정을 받지 못하니 레전드가 나올 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최강희 감독은 “베테랑은 항상 벼랑 끝에 서 있다. 은퇴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믿음을 나눠야 한다.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편견을 갖고 다루기 불편하다고 여긴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젊은 선수들도 결국 나이를 먹고 베테랑이 된다. 이동국은 “(최)은성이형이나 남일이(형), 제가 잘 해야 한다. 후배들이 오래 프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하고 그게 곧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고 역할이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