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린’ 조정석 “‘납뜩이’를 지우는 건 나를 깎아먹는 행동”

입력 2014-05-30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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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정석을 생각하면 ‘납뜩이’ 캐릭터를 지울 수 없다. ‘건축학개론’(2012)에서 승민(이제훈)에게 여자와 사랑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말했던 그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캐릭터로 남았다. 이후 드라마 ‘더킹 투하츠’, ‘최고다 이순신’, ‘관상’으로 캐릭터 변신을 꾀했지만 ‘납뜩이’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는 지워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조정석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우려는 행동이 나를 더 깎아먹는 행동”이라고 하며 내 맡은 바를 다한다면 문제되지 않을 거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작품은 ‘역린’이었다. 변신을 꾀하기 위함도 아닌 좋은 캐릭터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정조(현빈)를 암살해야 하는 조선의 최고의 살수인 ‘을수’ 역을 맡은 조정석은 ‘납뜩이’ 이미지를 한 꺼풀 벗은 듯 하다. 어렸을 때부터 광백(조재현)에게 끌려와 살인병기로 자란 을수는 잔혹하다. 젓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미소는 온데간데없으며 말수는 더더욱 없는 강렬한 인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한 조정석은 “‘정유역변’을 바탕으로 했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관계성에 흥미를 느낀 것 같다. 무엇보다 을수라는 캐릭터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극장에서 세 번 봤는데 을수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을수가 살아왔던 나날들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요. 대본 속에서도 을수의 과거는 부족했기에 계속 상상하며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광백에게 고문을 당해도 그 고통을 참으며 견뎠을 거 같았고 감정 표현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분노를 해도 억누르는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어두운 과거가 있는 사람일수록 희망에 대한 갈급함이 클 것이라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월혜(정은채)인지, 또 다른 인생이 희망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위해 왕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결심을 했다고 판단했죠.”

조정석은 ‘역린’으로 처음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대역이나 CG는 없었다. 그는 와이어를 매단 채 궁 지붕에서 뛰어내렸고 주막에서 칼 액션과 360도 공중회전을 직접 해냈다. 그 중에서도 조정석과 현빈의 존현각 전투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인물들의 갈등이 치달으며 펼치는 역동적인 액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조정석은 이 장면을 촬영하다 지미집에 머리를 부딪혀 멍이 들었고 손이 까지고 입술이 터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한 겨울에 그 장면을 찍었어요. 살수차로 비를 계속 뿌리는데 지붕과 바닥이 다 얼더라고요. 궁 마당에서부터 정조가 있는 존현각을 가기까지 딱 3주가 걸렸어요. 카메라가 지나갈 수 있는 다리를 녹이면서 촬영해야 했거든요. 제 긴 머리도 한 테이크 찍으면 얼어버려서 드라이기로 일일이 다 녹이면서 촬영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 때 존현각 안에서 비 안 맞고 있는 현빈이 가장 부럽더라고요. 하하.”

이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찍은 ‘역린’에 대해 그는 “역대 가장 힘든 영화”라며 농을 쳤고 “내 필모그래피에 ‘역린’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역린’에서 조정석은 유일하게 궁중나인 월혜(정은채)와 멜로가 그려진 인물.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이 둘의 만남은 잦지 않다. 못내 아쉬운 팬들도 꽤 있었을 터. 이에 대해 그는 “을수와 월혜의 첫 만남이 편집이 됐다.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이들의 사랑이 좀 더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라며 “하지만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었기에 편집이 적절히 된 것 같다. 을수는 왕을 죽이러 가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 뿐. 그게 월혜와의 사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을수와 월혜와의 사랑이 못내 아쉽다면 기다려라. 곧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들고 관객들을 찾아간다. 신민아와 싱그러운 사랑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멜로보다는 로맨틱코미디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신민아 씨랑 달콤하게 잘 찍은 것 같아요. 사랑스럽게 찍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다음은 뭘 찍고 싶냐고요? 호러물 빼고는 괜찮아요. 무서운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하하. 구미가 당기는 작품은 다 해보고 싶어요. 특이하게 저는 묵직한 작품 속에 담겨있는 블랙코미디가 좋더라고요. 세익스피어 4대 비극도 비극이지만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잖아요. 그런 게 끌리는 것 같아요.”

연이은 스크린 나들이와 더불어 조정석은 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복귀하게 된다. 그는 비극을 향해 치닫는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자유분방하고 순수한 ‘미키’역을 맡았다. 유치원부터 성인까지 20여 년의 세월을 특수 분장 없이 오직 연기력만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그동안 공연계에서는 조정석이 이제 무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추측이 난무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활약하고 있으니 당분간 그를 공연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친정집과 같은 무대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 답했다. ‘역린’ 홍보 와중에도 “‘블러드 브라더스’ 꼭 보러 오시라”며 깨알 같은 홍보도 잊지 않았다.

“제 매니저도 알겠지만 요즘 ‘룰루랄라’하며 연습실을 드나들고 있어요. 진짜 진~~짜 행복해요. 형·누나 등 아는 분들 만나니까 반갑죠. 추석 때 고향 간 기분이랄까? 좋아서 날아다닐 것 같아요. 무대에 복귀한 제 모습도 기대해주세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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