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 김장미 “소 뒷걸음질치다 金 딴 것 아니란걸 보여주겠다”

입력 2014-06-0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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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우리은행에 새로 둥지를 튼 김장미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인천은 김장미의 고향이기도 하다. 2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던 한국여자사격의 에이스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또 한번 금빛 표적을 정조준한다. 사진제공|대한사격연맹

■ 런던샛별 김장미 인천AG 金 정조준

런던땐 멋 모르고 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2년 지난 지금은 한국 여자사격의 에이스
“실력 증명…여자 진종오라 불리고 싶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한국사격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차지하며 이 종목 종합 1위에 올랐다. 2관왕에 오른 ‘권총황제’ 진종오(kt)뿐만 아니라 최영래(청원군청·남자 50m 권총 은메달), 김종현(창원시청·남자 50m 소총3자세 은메달) 등 새 얼굴들이 메달을 획득한 것이 큰 성과였다. 특히 여자권총에선 ‘샛별’이 탄생해 주목 받았다.

김장미(22·우리은행)는 여자 25m 권총 본선에서 올림픽신기록(591점)을 세운 뒤, 결선 합계 792.4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의 올림픽 여자사격 금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의 여갑순(공기소총)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국사격계는 “향후 10년을 이끌 선수”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장미는 세계 정상에 선 이후 톡톡 튀는 어투와 발랄한 매력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금빛 총성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1월 우리은행에 새로 둥지를 튼 김장미는 고향 인천에서 열리는 2014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2014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가 열린 창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 금메달 그 이후…“올림픽 거품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장미는 이름처럼 환하다. 쾌활한 에너지로 주변사람까지도 미소 짓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이후에는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저 혼자 메달을 따서 힘들었어요. 더 즐겼어야 하는데….” 런던올림픽 사격에서 여자 메달리스트는 김장미뿐이었다. 당시 그녀는 20세의 대표팀 막내선수였다. 동료들을 배려하느라 대놓고 좋은 티를 내지 못했다. 선배들은 “의식할 필요가 없다. 마음껏 즐기라”고 조언했지만, 어깨가 펴지질 않았다.

하루아침에 얼굴이 알려진 것도 부담스러웠다.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얼굴을 알아보시고, 사인 요청을 하시는 게 솔직히 불편할 때도 있더라고요.”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 대표팀 선배 진종오의 조언은 큰 힘이 됐다. 진종오는 올림픽에서 3회 연속 메달을 목에 건 베테랑이다. 올림픽 직후의 거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빠가 ‘주변 얘기에 신경 쓰지 말고 넌 네가 할 일만 잘 하면 되는 거야. 사격선수는 무엇보다 총을 잘 쏴야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올림픽 이후 반짝했지만, 한 달이면 그 유효기간이 끝날 것이란 것을 전 알고 있었어요.(웃음)”


● 장미라는 이름의 탄생 비화?

이름에 얽힌 일화 한 토막. 김장미의 어머니가 출생신고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만 해도 딸의 이름을 ‘초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순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동사무소에 온 한 주민이 자신의 강아지를 “초롱”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금쪽같은 딸에게 바로 눈앞에 있는 강아지와 같은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학창시절 가장 이름이 예뻤던 친구를 떠올렸다. 그렇게 ‘장미’가 됐다.

사격선수라고 해서 정적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장미는 어린시절부터 운동이라면 만능이었다. 한때 합기도를 배우기도 했고, 지금도 윈드서핑과 보드를 즐긴다. 지난달 24일 창원에서 열린 축구스타 박지성의 고별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했고, 프로야구 SK의 팬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꿈이 경호원이었을 만큼 활력이 넘친다. “뭘 하든 내가 1번이어야 하고, 리더여야 했어요. 확실히 어릴 때부터도 지기 싫어했던 것 같아요.” 꿈틀거리던 승부근성은 사격을 만나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 “반짝 스타 아니었단 걸 보여주겠다!”

사격에선 흔히 “멋모르고 쏠 때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여갑순과 강초현(한화 갤러리아·2000시드니올림픽 은메달) 등 여고생 메달리스트들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질수록,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수록, 사격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갈수록 부진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김장미는 런던올림픽 이전까지 사격대표팀이 철저하게 감춰왔던 선수다. 멋모르고 총을 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2012년 4월 런던에서 프레올림픽이 열렸어요. 그 때 세계기록(796.9점·25m 권총)을 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사실 전 그 때 세계기록이 몇 점인지도 몰랐어요. 한국기록만 알았죠. 만약 세계기록을 의식했다면, 그렇게 못 쐈을 것 같아요.”

김장미는 “‘여자 진종오’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격술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 공기·화약권총에서 모두 잘 하는 선수, 최상의 실력을 꾸준히 발휘하는 선수, …. 김장미가 이상향으로 바라는 모든 조건을 진종오가 갖추고 있다. “보통 사격선수들은 자신의 훈련일지도 잘 보여주지 않아요. 하지만 종오 오빠는 자기 노하우도 가르쳐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인천아시안게임은 김장미가 올림픽 금메달 이후 치르는 첫 메인 이벤트다. 런던에서의 깜짝 금메달이 운이 아닌 실력이었음을 입증할 기회다. 그러나 2년 전과는 달리 이제 김장미는 한국여자사격의 에이스다. 스포트라이트의 중압감을 이겨내야 한다. “저도 솔직히 제가 어쩌다 메달 딴 것은 알지만, 반짝 스타로 끝나고 싶진 않아요.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금메달을 딴 것은 아니란 걸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겐 이번 아시안게임이 중요해요.”

우리은행 사격단 권오근 감독은 “(김)장미는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운동을 해왔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한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귀띔했다. 김장미는 현재 인천아시안게임대표 1·2·3차 선발전 합계에서 25m 권총(1762점)과 공기권총(1152점) 부문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4·5·6차 선발전은 10∼24일 창원에서 열린다.

사진제공|대한사격연맹


창원|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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