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주’ 장률 감독 “믿고 보는 박해일·소박한 신민아에 반해”

입력 2014-06-17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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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은 “지인 중 한 분의 성함이 정말 ‘공윤희’였다. 신민아의 극중 역할 이름으로 쓰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셨다”며 웃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내 이야기 말고 박해일, 신민아 이야기를 많이 써주면 좋겠는데…. 허허허. 재미없는 내 이야기 써서 뭐 할라고~.”

인터뷰 중 한참 박해일과 신민아를 자랑한 장률 감독이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쉽지만(?)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최현(박해일)의 이야기가 바로 장률 감독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영화 ‘경주’는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이 경북 경주시에서 보낸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친한 형 장례식에 참석한 대구에 온 최현은 몇 년 전 들른 경주의 찻집 ‘아리솔’을 간다. 찻집 벽에서 본 춘화(春畵)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시 찾은 찻집에는 주인 공윤희(신민아)가 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그러다 어느새 공윤희의 집까지 따라간다. 야릇한 장면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야기는 공윤희의 슬픈 사연으로 접어든다.

이 이야기 중 일부는 장률 감독의 실제 경험담이다. 장 감독이 30대 초반이던 1995년 어느 날, 대구에 사는 지인과 함께 처음으로 간 경주에서 겪은 내용이다. 장률 감독의 돌발여행이 ‘경주’에 담겨 있다.

“‘경주’라는 공간이 계속 생각나더라. 지금 생각하면, 영화를 만들 때 내가 과거에 잊지 않고 있던 사람, 공간, 정서 등을 표현하는 것 같더라. 내가 경주를 갔을 때만 해도 영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계획에도 없었다. 그런데 ‘풍경’이라는 영화를 찍고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우연찮게 이 ‘경주’이야기가 나온 거다. 지인들이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그거, 재밌네!’라고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영화까지 나온 거지. 하하.”

장률 감독이 바라본 경주는 특이하다. 아니 특별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본 경주와는 사뭇 다르다. 뭔가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 이에 그는 “보통 한국인들은 수학여행지로 많이 다녀와서 그럴 것 같다. 그 때는 왕릉 이런 게 중요한가. 친구들이 더 중요하지. 공간은 잘 안 보이게 되지. 게다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잖아. 그 만큼 관심이 안 갈 수도 있지. 한 번쯤은 혼자 가볼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사는 코앞에 왕릉이 있으니까. 중국도 왕릉이 없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무덤을 싫어한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왕릉과 더불어 살더라. 1995년도에도 거기서 연애도 하고 술판도 벌어지고 그랬지. 영화처럼 능에 올라갈 수 있냐고? 안돼. 안돼. 영화에 보면 무서운 관리인이 있지 않나. 아마 영화를 보고나면 아무도 안 올라 갈 거라 믿는다. 하하.”

장률 감독.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영화 속 경주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세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누군가는 숨쉬고 다른 누군가는 숨을 거두고, 누군가는 살려고 발악을 하는 반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어버린다. 그 죽음을 본 누군가는 슬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외면해버리는 불편하면서도 일상적인, 게다가 오묘한 일이 일어나는 세상. 그게 인생이라는 것을 ‘경주’가 보여준다.

장률 감독은 “‘경주’라는 곳은 착각이 들 만한 공간이다. 영화를 찍는 순간에도 꿈을 꾸는 건지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분간을 못 할 정도였다”라며 영화 속에 나오는 점집을 예로 들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점집도 참 희한한 공간이다. 현실 속에 있는 공간이지만 과거도 보고 미래도 보는 곳 아닌가. 또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사람들은 믿더라. 심지어 돈을 내지 않는가. 하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한치 앞도 못 보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왜 명확한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극장가를 둘러봐도 어떤 영화든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영화가 많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내 영화가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오묘한 세계를 같이 고민하고 관객들을 존중하고 싶었다. 영화를 찍을 때 관객과 나는 같은 눈 위치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장률 감독은 탈북자이야기, 한국 이주노동자 이야기 등 체제 속에서 작아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박해일과 신민아를 그리고 ‘경주’를 찍는 다는 것은 의외였다. 장률 감독은 “나는 책이나 방송 등을 통해서 영감을 얻기 보단 내 경험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편”이라며 “아까도 말했듯 경주라는 공간이 참 인상적이었기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전문배우가 아니면 소화를 못할 것 같았다. 더더욱 좋은 배우가 해야 하고. 친분이 없던 박해일과 신민아가 단숨에 하자고 할지 예상 못했다. 나는 많은 돈을 줄 수도 없는 감독인데 배우들이 희생적으로 와서 해 준 것이다.”

장률 감독.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장률 감독은 박해일과 신민아를 일컬어 “궁금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해일 작품은 2~3번 봤고 신민아 작품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들에 대해 상상만 해봤다. 참으로 궁금한 사람들이었다”고 두 배우를 설명했다.

“박해일이 맡은 ‘최현’은 복잡한 인물이다. 섬세한 면도 있고 엉뚱한 면도 있어야 했다. 또한 학문을 깊게 연구하는 대학교수라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도 나야 했다. 그런데 그는 정말 탁월하게 연기를 잘 하더라. 똘기도 있는 것 같고 신비스럽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쟤는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하. 신민아는 길거리에 걸려있는 사진만 봤지,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예고편 정도? 제작자들도 신민아의 캐스팅을 꺼려했다. ‘경주’에 안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 신민아 이미지에 묻힐 것 같다고…. 그런데 수많은 여배우 얼굴 중에 신민아에게 눈길이 갔다. 이질적인 느낌을 지녔다고나 할까. 궁금한 얼굴이었다. 만나보니 소박하지만 신비로운 매력을 지녔더라. 이 여배우와 하면 뭔가 나오겠다 싶었다. 촬영을 마칠 때 제작자들도 신민아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하더라.”

마지막으로 장 감독에게 ‘경주’ 때문에 찾집 ‘아리솔’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겠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그러면 좋지. 예전엔 전통찻집도 많았는데 지금은 커피숍이 늘어나서 많이 사라졌더라고. 전통차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 잔 마셔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더불어 ‘경주’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여유를 즐기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제 막 ‘경주’라는 영화가 관객에게 선보였으니 많이 보면 투자가 들어오겠지. 안 되면 제작자들이 피하지 않을까? 하하. 관객들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했으면 좋겠다. ‘아리솔’에서 황차를 마시던 박해일처럼.”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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