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해설 사심 리뷰] 친절 영표, 직설 정환, 열정 차붐

입력 2014-06-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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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조우종-송종국·안정환-차범근·배성재·차두리(맨 위부터 아래로). 사진|이영표 트위터-MBC-SBS

이영표··조우종-송종국·안정환-차범근·배성재·차두리(맨 위부터 아래로). 사진|이영표 트위터-MBC-SBS

명색이 스포츠신문 기자라면서 축구 중계방송이라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마치 시류에 편승하듯 열기가 고조되고서야 ‘아! 봐야하는구나’ 깨닫나보다. 월드컵 파견 취재가 아니라면 축구의 ‘축’자에도 관심이 없을 것 같은 3인의 여기자들. 이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미지의 신세계’요, ‘호기심천국’이었을, 18일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 중계방송에 ‘감히 사심(私心)’의 눈을 들이댄다.


KBS 이영표 친절한 해설 귀에 쏙쏙
철저한 분석 통한 신내림 예언 눈길

축구? 이른바 ‘A매치’만 챙겨보는, 무늬만 ‘붉은악마’임을 먼저 고백한다.

그런 면에서 이영표의 해설은 한 마디로 ‘친절한 교생 선생님’의 축구 강의다. 말의 속도는 비교적 빨랐지만 정확한 발음과 목소리 톤 덕분에 경기 이해도는 만점. 하지만 지나치게 차분하고 진지한 해설은 가끔은 지루했고, 유머가 섞인 통통 튀는 멘트의 부재는 아쉬웠다.

그래도 과연 이영표였다. 앞서 스페인의 몰락과 일본의 패배 등을 예측해 ‘문어영표’ ‘영표도사’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후반 이근호가 교체된 후 “오늘 이근호가 핵심이다. 그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차분함을 유지하던 이영표가 감동과 환희의 목소리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라며 흥분하는 모습에선 굉장한 ‘포스’까지 느껴졌다. 철저한 사전 분석이 아니었다면 가능할까 탄복할 뿐이다.

90분 내내 축구 팬들의 혼을 쏙 빼놓는 속사포 중계와 달리 중요한 순간엔 불필요한 멘트를 싹 빼놓으니 그 또한 묘미다. 선수들의 움직임엔 질책보다 칭찬과 격려 일색. ‘편파 해설’이 따로 없다. 보는 이의 답답한 속을 긁어주는 따끔한 질책도 때론 특별한 재미가 있을 텐데….

어쨌든 이번 월드컵 중계 경쟁에서 반전의 주인공은 초반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이영표일 게다. KBS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마침 KBS는 이날 오후 실시간 평균 시청률 17.9%로 MBC(13.9%)와 SBS (10.2%·이상 닐슨코리아)를 앞섰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지역 샘플 550가구의 평균치라니, 19일 오전 전체 시청률이 궁금해진다.


MBC 송종국 착실한 해설 밑밥 삼아
안정환 따끔한 질책 등 화제성 압도

이쯤 되면 ‘묻어가기’ 아닐까.

‘수비수’ 송종국이 착실하게 깔아놓은 해설 위에 ‘공격수’ 안정환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묻어갔다. 아무리 선수 시절 포지션에 익숙해진 ‘관계’이고 선후배 사이라지만…. 볼 점유율처럼 해설에도 그것이 있다면 송종국과 안정환의 비율은 8대2 정도. 많이 양보해 7대3이다. 반박의 여지없는, 송종국의 압승.

그런데도 해설에 관한 한 안정환이 더 큰 화제를 모으는 건 ‘유효 해설’의 효과다. 말수는 적지만 귀에 쏙쏙 박히는 ‘센 말들’. ‘영리한 테리우스’의 공격적 해설은 꽤 자극적이다.

지상파 방송 3사 해설위원 중 선수들의 실명을 콕 집어 꾸짖는 이는 그 뿐이다.

이근호의 골이 터진 직후 그 격한 와중에 “소주 사겠다”며 사심을 드러내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박주영은 “안 뛰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성용이 옐로카드를 받았을 땐 “오른발을 들었으니 명백한 태클”이라고 지적했다. ‘역대 월드컵 최다 골 보유자(한국기준)’로서 할 말은 하겠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자, 중계를 지켜보는 축구 팬을 대변하는 ‘입’이 되겠다는 각오다.

선수보다 축구 팬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작심은 끝없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손홍민이 골 찬스에 실패하자 “다른 선수에게 패스했다면 골이었다”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앞서 이동국이 “안정환의 해설은 선수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고 말한 건 그냥 나온 우려가 아니었다.

부디 조별리그가 끝날 때까지 박주영과 기성용, 손홍민은 MBC 중계는 보지 않기를.


SBS 차범근 땀에 젖은 뜨거운 해설
실수해도 다독이는 아버지의 모습도

열정의 ‘차붐’.

90분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차범근 해설위원은 때로는 부드럽게 드리블하듯, 때로는 강력한 슈팅으로 휘몰아치듯 선수들과 축구 팬들을 몰고 다녔다.

경기 전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하이톤을 내뱉는가 하면, 배성재 캐스터가 “차두리 해설위원은 ‘뽀송뽀송’한데 차범근 위원은 흠뻑 다 젖었다”고 말할 정도로 차범근은 경기가 끝난 뒤 머리와 셔츠가 땀으로 흥건했다.

열정의 소유자, ‘진격의 해설가’인 그는 그동안 월드컵 중계에 있어 뚜렷한 적수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강력한 도전자들이 나타나면서 위협(?) 아닌 위협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들의 반격에 당황하지 않고 차 위원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지나치게 차분하다는 지적에는 ‘속사포 랩’을 연상하듯 빠른 해설로 압도했다. 지루하다는 지적까지 물리친, ‘1타2피’다. 배성재 캐스터와 차두리까지 끼어들 틈이 없다. 뛰어난 분석력으로 국가대표급 해설을 자랑하는 만큼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한국팀은 물론 러시아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까지 쉽게 설명해 주었다. 가끔 어려운 단어나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는 차두리와 배 캐스터가 부연 설명을 곁들여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독설을 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선수들을 감싸는 차 위원만의 방식인 ‘따뜻한 해설’도 돋보였다. 슛이 빗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아! 아깝다”며 탄식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다독거리는 모습은 마치 아버지의 그것이었다.

역시 누가 뭐래도 구관이 명관이다.


■ 한국-러시아전 중계 말말말


● 이영표 “주심은 바꿀수 없다”

“주심은 바꿀 수 없다. 선수들이 바뀌어야 한다.”(이영표)
(손흥민이 경고를 받자 주심의 성향을 더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기청용, 이성용, 아니 이청용 선수가 좋습니다.”(이영표)
(이청용의 도움으로 박주영이 슛을 시도하자 이청용을 칭찬하려다 기성용과 헷갈린 듯)


● 안정환 “선수들 10km는 뛰어야”

“한국 선수는 한 명이 10km는 뛰어야 합니다.”(안정환)
(후반전 구자철, 한국영, 이청용의 총 움직임이 7km대로 집계되자)

“때땡큐죠.” (안정환)
(후반 23분 이근호의 골이 터지자. ‘땡큐보다 더 좋은 칭찬’이라며)


● 배성재 “산유국 기름손 골키퍼”

“러시아가 산유국이다. 골키퍼가 기름손이라 놓친 것 같다.”(배성재)
(이근호가 찬 공이 러 골키퍼 이고르 아킨페프의 손을 터치한 뒤 골로 이어지자)

“몸보신이라도 해야겠어요.”(차범근)
(중계 후 그라운드를 뛴 것처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자)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icky337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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