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 부상투혼 금메달 “시할아버지 영전에”

입력 2014-07-0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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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스포츠동아DB

5월 월드컵대회서 전방 십자인대 파열
치료·운동 병행하며 아시아선수권 출전
플뢰레 개인·단체전 우승 통산 10번째 금
대회 도중 시할아버지 별세 소식에 눈물


전방 십자인대 부분 파열 부상을 딛고 따낸 투혼의 금메달이었다. ‘펜싱여제’는 금메달을 시할아버지의 영전에 바쳤다. 남현희(33·성남시청)는 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4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여자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전희숙(30·서울시청)을 15-12로 꺾고 정상에 섰다. 5일 열린 여자플뢰레 단체전 결승에서도 전희숙, 오하나(성남시청), 김미나(인천서구청)와 호흡을 맞추며 중국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2010·2011·2012년에 이어 이 대회에서만 5번째로 2관왕에 등극한 것이다. 통산 10번째 금메달이기도 하다. 2013년 임신과 출산으로 불참했지만, 다시 검을 잡은지 1년 만에 아시아 정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9월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 시할아버지 영전에 바친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남현희는 2011년 11월 사이클선수 공효석(28)과 결혼했다. 시댁 가족들은 ‘주부선수’ 남현희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특히 시할아버지 고(故) 공금열 씨는 손자며느리를 애지중지하며 예뻐했다. 공효석은 한때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할아버지 댁에 머물며 선수생활을 했다. 할아버지는 공효석이 7세 때, 처음으로 자전거를 선물한 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손자를 위해 값비싼 자전거 용품을 사주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공효석은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손자며느리에 대한 성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소한 체격(157cm)에도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손자며느리를 항상 염려했고, 또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올해 시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남현희-공효석 부부는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손자부부였다. 지난해 4월에 얻은 딸 하이(1)를 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가평을 찾았다. 틈틈이 시할아버지댁 냉장고를 반찬과 약수로 채워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2일 저녁…. 남현희는 개인전 정상에 선 뒤 도핑테스트를 받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켠 순간, 수많은 축하문자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후배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언니, 형부 상(喪)당했다면서…. 어떻게 된 일이야?” 순간 철렁했다. 그 날 낮 12시47분 시할아버지가 향년 84세로 별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현희의 시댁 가족들은 며느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자칫 심리적으로 흔들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금메달의 기쁨도 잠시였다. 도핑테스트를 마친 뒤 곧바로 가평에 위치한 빈소로 향했다. 그리고 영정 앞에 말없이 금메달을 올려놓았다. 남현희는 “적적해하시다가도 증손녀인 하이를 보면 무척 좋아하셨다. 한번이라도 하이의 얼굴을 더 보여드리고 싶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 전방 십자인대 부분 파열, 부상 투혼으로 인천까지 간다!

남현희는 이번 대회 내내 부상과도 싸웠다.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 출전했을 때였다. 오른쪽 무릎이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이른바 “튕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증이 가시지 않아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전방 십자인대 부분 파열. 만약 수술을 한다면, 9월 인천아시안게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선 무릎에 보호기를 차고, 목발을 짚으며 3주에서 3개월간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아시안게임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현희는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는 쪽을 택했다. 러닝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체력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노련미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의 전초전 격인 아시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자신감을 얻었다.

남현희는 “걷기만 해도 아플 때가 있다. 운동량이 많으면 잠을 못잘 정도로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포기할 수 없다. 현재 오전·오후·야간 운동 전에 꼬박꼬박 치료를 받으며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상대에게 끌려다니기보다 내가 경기를 컨트롤한다면, 체력적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여자플뢰레 최명진 코치님을 비롯해 이수근(여자사브르), 고진(남자플뢰레), 유상주(남자사브르) 코치님 등 대표팀 지도자 분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2006도하대회와 2010광저우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아시안게임 2관왕에 도전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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