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섹시한데 백치미까지…완벽한 ‘록시 하트’ 아이비

입력 2014-09-05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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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에 둘러싸인 록시(아이비 분)가 변호사 빌리(이종혁 분)에게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카고’의 한 장면. 아이비는 역대 ‘록시 하트’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뮤지컬 ‘시카고’ 히로인 아이비

여자배우 중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배우는 많다. 섹시한 배우도 적지 않다. 섹시하면서도 백치미까지 갖춘 마릴린 먼로형 배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섹시하면서 백치미가 있으며, 코믹코드까지 장착한 여배우는 없다. 정말 없다. 아니, 없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드디어 한 명을 찾아냈다. 가수 아이비다.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 하트’는 섹시하면서 백치미가 있으며 코미디까지 소화해야 하는 하드한 역할이다. 영화에서는 르네 젤위거가 열연했다. 아이비의 ‘록시 하트’는 정말 근사했다. 한마디로 ‘가진 게 많은’ 배우라는 느낌이다. 성녀의 순수함과 팜파탈의 잔혹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음색을 가졌다. 빠른 템포의 음악과 골반을 흔드는 섹시댄스 가수로만 아이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댄스음악보다 발라드를 더 많이 부른 가수다. 2012년 ‘찢긴 가슴’이 실린 복귀앨범 역시 발라드 곡들이 넘실댔다.

댄스가수 출신답게 브로드웨이 뮤지컬 안무의 전설 밥 파시의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밥 파시의 안무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면 출 수 없다. 걷어차는 다리의 각도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더 없이 은근하고 섹시한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 아이비의 안무는 역대 ‘록시 하트’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시카고의 마지막 장면. 감옥에서 풀려난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최정원 분)는 함께 공연을 펼친다. 아이비는 비록 스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무대에 서게 된 록시 하트의 감정선을 벌겋게 달아오른 눈과 미소를 띤 입가의 미묘한 각도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벨마와 춤을 추며 점차 행복감의 수치를 끌어올려간다. 섹시하지만 어딘지 멍청하고, 멍청한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우가 꼬리 아홉 개를 말고 있는 여자로만 보아 왔던 ‘록시 하트’가 ‘여자’로, ‘사람’으로 다가오는 명장면이었다.

이런 ‘록시 하트’를 보여준 배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비는 완벽했다. 옥주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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