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그들은 왜 하필 노래방으로 향했나?

입력 2014-09-18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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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는 노래방에서 벌어지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절묘하게 엮은 작품이다. 기발한 상상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사진제공|스토리피

■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네 가지 에피소드…치밀한 구성력
놀이터=화장실? 기발한 아이디어
노래방 주인의 애드리브 깨알 재미


실컷 웃으며 보지만, 공연장을 빠져나와서는 곧바로 귀가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작품이다. 대학로 어디라도 좋으니 맥주 한잔 들이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초강력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연극이다.

독특한 제목을 갖고 있다.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이하 우노얘)’. 아버지(진선규 분)와 아들(김대현 분), 아들과 여자친구(노수산나 분), 여자친구와 ‘노는 친구(차용학·이석 분)’, 아버지와 애인(백은혜 분)이 차례로 노래방에서 풀어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총 네 편의 에피소드는 제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극단 간다의 대표이자 ‘우노얘’의 극작가, 연출가인 민준호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절묘한 배치, 기발한 상상, 예술적 상징이 돋보인다.

무대는 중앙에 놓인 노래방 시설과 뒤편의 놀이터(시소, 그네 등)로 구성돼 있다. 이 놀이터가 극중에서는 화장실이라는 점이 기발하다. 관객에게는 놀이터지만 극중 인물에게는 화장실이다. 등장인물들은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하고는 놀이터로 향하게 된다.

노래방 주인(정선아 분)은 “화장실에서 ‘볼 일’만 보란 법은 없지 않나”라고 힌트를 주지만, 왜 화장실을 놀이터로 대체해 놓았는지는 관객이 풀어야 한다.

인물과 상황의 절묘한 배치가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듯한 짜릿한 구성감을 제공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던 반항아 아들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잡기 위해 갖은 ‘진상’을 부리며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에는 여자친구의 ‘하이킥’ 한 방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진다. 찌질한 남자의 극치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버지 역시 애인에게 결별을 통보받는다. 화장실(놀이터)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온 아버지는 노래방에서 혼자 외로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애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돌아선다. 아들은 잡을 수 없는 사랑을 하지만, 아버지는 잡을 수 있지만 돌아서는 사랑이다. 아들 앞에서는 버럭버럭 소리만 지르는 폭군이었지만, 사랑하는 애인에게는 더 없이 사근사근한 신사로 변하는 대비도 재미있다.

‘우노얘’의 노래방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방 주인은 올드팝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부른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요’가 쓸쓸히 메아리치면, 등장인물들이 한 명씩 무대로 올라와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에 잠긴다. 상당히 근사한 엔딩이다.

노래방 주인의 깨알 애드리브는 놓치지 말 것. 노래방 주인 역의 정선아는 자신과 동명의 뮤지컬배우를 빗대 빵빵 터지는 대사를 구사한다. 소녀1·2로 분한 차용학, 이석(모두 남자배우다)의 아이돌 안무는 관객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차용학의 골반댄스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10월19일까지 공연한다. 김용준, 유지연, 박민정, 윤나무, 이지해, 홍우진, 오의식 등도 번갈아가며 출연 중. 공연 팬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대학로의 강자들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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