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의원’ 이원석 감독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똑같아요”

입력 2015-01-11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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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이었다.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 VIP 시사회를 보고 나오는 데 이원석 감독을 만났다. 안부를 주고받다 그가 사극을 차기작으로 정했다고 했다. 당시 건투를 빈다고 했지만 속으론 갸우뚱했다. 그의 전작인 ‘남자사용설명서’를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재기발랄하고 독특한 연출력을 지닌 그가 근엄하고 전통적인 사극이라니. 독특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되는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수개월 후, 이원석 감독은 정말 ‘상의원’을 들고 나타났다. 게다가 한석규, 고수, 유연석, 박신혜라는 대세 배우들을 이끌고 말이다. “사극을 정말 싫어하는데”라고 연거푸 말하던 그 역시 아직까지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극은 제게 판타지 같아요. 공감을 전혀 못하겠어요. 그 시대를 안 살아서 가짜 같은 느낌도 나고요. 그런데 ‘상의원’ 시나리오는 여운이 강하게 남더라고요. 시대는 분명 과거인데 이야기는 현대 같은 기분도 들고요. 그래도 사극은 자신 없어서 거절하려 했는데 그냥 한다고 했어요. (웃음) 사극 틀 안에서 사람들의 질투와 분노를 표현하며 과거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사극을 하겠다고 결정하자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변에서 뜯어말리며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 감독은 처음에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그는 “진~~짜 어렵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극은 현대극과 시작부터 차원이 달랐다. 세트와 조명부터 편집까지 일체 꾀를 부릴 곳도 없었고 특수 효과로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증된 의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정해진 복장만을 입어야 했다. ‘상의원’은 통제된 사회에서도 자유로운 디자인을 꿈꾸었던 한 천재 공진(고수)의 머릿속을 스크친 위에 명품 의복으로 펼쳐냈다. 의복 제작은 조선복식사 연구가 그 시작이었다. 제작진은 조선시대 왕들이 입던 옷, 왕비가 입던 옷, 신분에 따라 달리 입던 옷까지 약 500여 년의 조선시대 의복 변화과정을 연구해 가장 변화를 많이 이루었던 의상을 기점으로 삼았다.

“아무래도 왕의 옷을 만드는 기관인 ‘상의원’을 다루는 영화이다보니 의상이 가장 신경 쓰였죠. 한복전문가들과 조상경 의상 감독이 정말 온갖 자료를 다 뒤져가며 고안해낸 의상이었어요. 딱히 어떤 시대의 의상을 표현했다기 보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의상을 다 다뤄보자고 생각했죠. 일단 다 섞어보자는 식이었어요. 한 눈에 조선시대의 의상 트렌드를 볼 수 있도록. 특히 ‘영조’ 때를 많이 참고했어요. 여성한복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과감한 색상을 많이 썼더군요. 그동안 조선 의복에선 볼 수 없던 스타일이었어요. 의상은 모두 수작업으로 작업했어요. 의상 만드는 데 대략 3개월 정도 걸렸어요. 정말 공을 많이 드렸어요.”


빼놓지 않고 물어야 하는 것은 캐스팅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 사극에 첫 도전하는 고수, 그리고 흥행보증수표 박신혜, 유연석까지 그들의 명품연기가 어우러져 ‘상의원’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석규 선배님은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하신다고 하셨고 고수 씨는 두 번의 만남을 가지고 출연 결정을 내렸어요. 고수 씨가 가벼운 역할은 안 했던 것 같더라고요. 만나보니 그렇게 재미있는 친구가 왜 이런 역할을 안 해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TV에서 보던 사람들을 만나니 신기했어요. 하하. 특히 한석규 선배한테 놀랐던 것은 코믹 연기는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정말 잘 하시더라고요. 또 가채 쓰고 하는 연기는 정말 섬뜩하리만큼 무서웠고요. 역시 ‘한석규다’ 싶었죠.”

‘상의원’은 의상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감정을 담았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과 타고난 능력을 가진 이를 향한 질투 또는 열등감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가 떠오르는 자유로운 천재 공진과 현실적인 장인 돌석의 대결구도에서는 앞서 말한 ‘질투’와 ‘열등감’이 드러난다. 이는 과거에만 있었던 감정이 아닌 현대에서도 나타나는 인간의 감성 중 하나다. ‘상의원’이 선보이는 아름다움, 질투, 열등감 등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안에 있는 ‘공진’과 ‘돌석’은 같은 사람이에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인격이 있잖아요. 어떤 때는 자유롭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세상과 타협할 때도 있고요. 아마 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요? 저는 ‘상의원’을 ‘옷’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옷은 그냥 갖다 놓으면 천인데 사람이 입는 순간 의상이 되는 거고 아름답고 변하잖아요. 그래서 ‘의상’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고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원석 감독에게 물어봤다. ‘공진’과 ‘돌석’ 중 누구를 더 닮은 것 같냐고.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공진’과 ‘돌석’ 중간에서 늘 싸우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연출가로선 ‘공진’같은 구석이 더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있으니 ‘돌석’ 같은 면도 있어야죠. 하하.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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