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다중 인격 캐릭터가 선사하는 짜릿한 맛…조승우의 지킬 그리고 하이드

입력 2015-02-03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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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벽두부터 안방극장에는 다중 인격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킬미, 힐미’의 지성과 ‘하이드 지킬, 나’의 현빈이 시청자들에게 다중 인격 캐릭터의 매력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브라운관에서 무대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다중 인격을 만날 수 있다.

다중 인격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의 조승우가 그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뮤지컬 중 하나인 ‘지킬앤 하이드’는 2004년 초연 이후 올해로 11년째 인기를 이어가고 있고, 그 인기의 선봉에 선 ‘조지킬’ 조승우는 지난달 31일 공연으로 200회를 맞았다.

브라운관이든 무대에서든 다중 인격을 소재로한 작품이 지닌 힘은 결국은 캐릭터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배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기하냐에 따라 작품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회 전석매진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운 조승우가 이 극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놀라움 그 자체다.


○전형적인 캐릭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다

‘겉만 알고 속은 몰라 보이는 게 다가 아냐. 인간들은 변장의 달인. 그 음흉한 비밀은 뭘까 그 거짓은 사실일까 사실 인간들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조승우가 표현하는 하이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절대 악이 아니다. 그는 놀랍게도 하이드를 연민이 드는 캐릭터로 바꿔 놓았다. 극악무도한 살인을 거리낌없이 저지르지만 루시를 사랑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평면적일 수 있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살리면서 극은 생각할 여지를 더욱 만들어 두었다.지킬 또한 선하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인물로 절대 나약하지 않다.

조승우의 지킬과 하이드는 단순히 분리된 인격이 아니다. 공존이라는 쪽에 무게감을 두며 말 그대로 ‘인간의 이중성’에 방점을 맞춰 표현한다. 지킬인 순간 하이드가 겹쳐 나타나고 하이드인 순간에도 지킬의 모습이 녹아있다.

두 캐릭터의 경계를 나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구축한다. 그것이 조승우의 ‘지킬앤 하이드’에 관객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풍부한 표정 연기, 기승전결을 표정에서 느낀다

이제는 웬만한 가요보다도 유명해진 뮤지컬 넘버로 무대에서 뿐 아니라 맥주 광고에서도 결혼식장에서도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불러젖히는 ‘지금 이 순간’ 이지만 그럼에도 조승우의 ‘지금 이 순간’은 특별하다.

희망적인 가사를 담고 있지만 이 후에 지킬이 치르게 될 대가와 결말을 생각하면 절대 희망적이지 만은 않은 이곡에서 조승우는 수십가지의 표정변화로 감정을 표현해낸다. 뮤지컬 넘버들은 듣는 재미와 더불어 보는 재미가 동시에 충족될 때 진정한 감동을 준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부분이다.

방금전까지 애드립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눈웃음으로 여성 관객들을 설레게 하던 ‘조지킬’은 순식간에 야수 하이드로 변한다. 이 변화의 간극이 주는 충격은 상상 이상.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정말 한 사람이 표현하는게 맞나 싶을 정도다.

‘원스어폰어드림’(Once Upon A Dream)에서 ‘엠마’를 향한 그리움과 고통스움을 나타내는 애절한 표정이나 ‘루시’를 상처입힌게 본인(하이드)인 것을 알게 됐을 때 나오는 찰나의 표정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

○이야기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디테일

캐릭터를 표현하는 그의 다양한 디테일들도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훨씬 풍부하게 만든다.

왼팔에 주사를 맞고 하이드로 변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나오는 왼손과 오른손의 디테일 차이는 그가 얼마나 철저한 계산속에 연기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가 무대 중앙에서 연기하는 장면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아도, 조명이 다 꺼지고 퇴장하는 순간에도 그의 연기는 계속된다.

하지만 조승우의 연기 디테일이 정말 놀라운 점은 단순히 장면 장면에만 짜맞춘 것이 아니라 극 전체를 관통하는 디테일이라는 점에 있다. 조승우는 같은 극이지만 공연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현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날 그날의 감정에 따라 디테일이 차곡차곡 연결 되어 극을 이끄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소름이 돋는다.


○배우 역량의 집대성, 클라이막스에서 느끼는 희열

조승우의 캐릭터 표현력, 표정, 디테일은 지킬과 하이드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컨프론테이션’(confrontation) 에서 절정을 이룬다.

지킬 그리고 하이드, 두 개의 같지만 다른 각각의 캐릭터에 개연성을 이미 극 진행동안 충실하게 잘 표현해 두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밀리지 않는 그야말로 ‘대결’을 보여준다.

지킬과 하이드를 넘나들고 두 인격이 겹치는 경계까지도 온몸을 이용해 표현해 낸다. 극 중에서 두 개의 인격을 나누는데 조명의 도움을 받지만 조승우의 ‘컨프론테이션’은 조명도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캐릭터간의 밸런스가 맞아 떨어지고 연기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공연장 전체가 숨죽인 채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돈다. 관객들이 한치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연기다.

10주년을 기념하며 화려하게 시작한 ‘지킬앤 하이드’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서 후반부를 향하고 있다. 200번의 다중 인격을 경험한 조승우가 남은 기간 동안 또 어떤 새로운 연기를 선보일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 4월 5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

동아닷컴 권보라 기자 hgbr36@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제공=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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