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법칙] 일본 음악시장을 지탱하는 힘 ‘즐겁다면 모든 게 OK’

입력 2015-03-17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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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라이브 클럽의 공연 모습. 딸과 함께 클럽을 찾은 이 할머니는 이날 생일을 맞아 무대에 올랐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지금은 과거보다 다소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 2위의 음악시장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각국의 뮤지션들이 해외진출의 첫 번째로 손꼽는 곳이다.

재미있는 점은 단순히 인구수에 의거해 시장의 크기를 매긴다면 당연히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 수위를 다퉈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음악시장이 활성화 된 저변에는 음악을 단순히 '듣기'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부르고 연주하며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로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 취재차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우연히 시부야의 작은 라이브 클럽을 방문했고, 이곳에서 국내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진귀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소 아마추어나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을 펼치는 라이브 클럽이었지만 이날은 '세션 데이'로 진행돼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고, 현장에 있던 4명의 가족들과 또 다른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서 밴드를 결성했다.

전문적인 음악가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결성된 밴드인만큼 다소 서툴고 호흡이 맞지 않은 모습이 자주 연출됐고, 관객 역시 필자를 포함해 두 명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어느 가수들 못지않게 즐겁고 열정적으로 무대를 진행했고, 현장의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더욱 눈길을 끈 부분은 그 다음 이어진 공연의 주인공. 담배와 맥주 냄새가 풍기는 작은 클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점잖은 인상의 할머니가 무대에 올라 왔다.

자신을 오키나와 출신에 오늘 생일을 맞이 했다고 밝힌 이 할머니는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라며 '눈물이 주룩주룩'을 열창했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클럽과 할머니의 무대는 꽤나 멋드러진 분위기를 자아내며 "할머니 멋지다"라는 응원을 이끌어냈다.

그 다음 공연도 흥미로웠다. 때마침 가게에는 일본에서 거주중인 한국인 이종훈 씨(34)도 있었고, 과거 드럼을 쳤다는 말에 클럽주인은 "일단 신청하고 봐라"라며 무대에 올라가기를 권유했다.

갑작스러운 권유에 다소 부담을 느낄 법도 했지만 이 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시작했다. 초반의 어색함과 달리 분위기가 무르익자 즉흥 잼까지 시도하는 과감한 무대를 선보였다.

물론 이를 들은 클럽의 주인은 "아나키적인 연주였다"라고 재치넘치는 평을 내리긴 했지만 연주자들은 연주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무대 이후 이 씨는 "다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다"라며 "(이 사람들과)처음 연주해 보는 것이라서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오랫동안 드럼연주를 하지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치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무대에 올라가라고 하면 실제로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음악을 직접 해보고 시도하는 태도가 우리나라와 일본이 조금 다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뜻으로, 이는 일본에서의 음악은 하나의 '놀이 문화'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이처럼 굳이 음악가와 일반 대중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음악을 향유하는 분위기야말로 다양한 장르의 가수와 밴드, 좋은 음악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실제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한 인디 뮤지션은 "사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건 어차피 자기 만족이고 성공하고 말고는 그 다음 이야기다"라며 "내가 즐겁고 만족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거리에서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만든 노래를 혹은 연주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 하다. 운 좋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성공하는 것이다"라고 버스킹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국내 가요계는 메이저 시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디씬 역시 대중적인 성공 혹은 명성을 얻겠다는 등의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아이돌', '뮤지션', '아티스트'와 같은 단어들로 가수들의 등급을 나누며 음악이란 대중이 직접 연주하고 만들기 힘든 것이라는 거리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프로로 살아남기 위해서 높은 이상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는 당연히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한 가지만을 보고 나아가면 시선은 국한되고 또 다른 것을 놓치기도 쉽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장난처럼 탄생한 음악이 사람들의 환영을 받기도 하고 또 음악이란 원래 그런 것이란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로, 우리나라의 음악시장도 더 큰 발전을 위해선 이 같은 '생활 음악'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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